목적의 덫

2022-04-05     김남국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장
김남국 연구소장

21세기에 비소설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로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을 들 수 있다. 5,00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은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느냐 여부를 놓고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종교인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적의식은 경영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당근과 채찍 같은 전통적인 동기부여 수단보다 목적의식 같은 고차원적 수단을 통해 종업원들의 몰입도와 창의성, 행복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성당을 건설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일을 ‘벽돌을 옮기는 것’을 정의하는 것보다 ‘하느님의 전당을 만드는 숭고한 일’이라고 인식한다면 업무에 대한 몰입도나 만족도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멋진 목적의식을 만들었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현실 경영은 그렇게 쉽지 않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최신호(2022년 3,4월호)에 실린 아티클이 목적의식과 관련한 덫을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공유 오피스 업체인 위워크의 목적은 “세계의 의식을 고양하는 것(elevate the world's consciousness)”이다. 공간이 사람의 인식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공간만으로 의식이나 생각을 바꾸기는 어려운 것도 분명한 현실이다. 육수와 소스 등을 만드는 크노르는 “접시에 올려놓는 것을 바꿔 세상을 바꾼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소스와 육수 등으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 역시 현실감이 많이 떨어진다. 즉 실제 하고 있는 일에 비해 목적이 너무 과하면 목적의식은 기업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기 힘들다.
 

경영에서 목적의식은 조직의 발전과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치장하거나 합리화하기 위해 목적의식을 활용하는 것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다. 네슬레는 “세계를 선도하는 영양, 건강, 웰니스 기업”을 표방했다. 다양한 식품을 생산하는 업체여서 충분히 멋진 목적의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네슬레의 대부분 매출이 스낵과 제과에서 나온다고 한다. 건강, 웰니스와 거리가 있는 사업이 대부분인 상황이라면 부정적 영향을 숨기기 위한 소위 ‘워싱(washing)’ 논란까지 나올 수 있다. 담배 회사가 내놓은 “세계의 담배 연기를 없애고 더 나은 미래를 창조하자”는 식의 목적 역시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힘들다.

목적은 잘 설정하면 조직원들을 통합하고 다양한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으며 기업 전략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쳐 조직의 발전과 성장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깊은 고민 없이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기업의 실제 활동가 거리가 있거나 일치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조직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