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의위원 자의적 판단에 산으로 가는 ‘건축심의’, 설계의도 훼손에 설계자 ‘한숨’

도면 이해 無·내용 모르고 심의…‘시간·에너지·인격’ 낭비 점입가경 심의만 50여 개 ‘규제 위한 규제’로 점철된 지 오래, 해법 없을까 대한건축사협회 4월 ‘건축심의제도 개선’ 국회 정책토론회 개최 심의 관리 강화 및 명확화·통합화, 절차 간소화 방안 마련

2022-03-04     장영호 기자

# 최근 동네주민센터를 설계한 A 건축사. 규모가 대지 165제곱미터, 연면적 495제곱미터인 작은 프로젝트지만, 젊은 건축사로서 나름 최선을 다해 설계를 마친 후 건축심의를 신청했다. 그런데 한 심의위원이 터무니없는 이유를 대며 재설계를 주문하는가 하면, 또 다른 위원은 도면을 대충 들여다보고는 계단 위치를 다시 바꾸라며 한마디 툭 던져 진땀을 흘렸다. 더 가관은 수정을 요구한 심의위원이 도면(평면도) 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경관 심의에서 건축물 내부를 언급하거나, 건축심의 이전 심의에 검토된 사항과 중복·상반된 의견을 제시하며 반영을 요구하는 이른바 과도한 건축심의 갑질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건축사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규제를 위한 규제로 점철된 현행 건축심의 문제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히 소수 위원이 주관적 판단으로 심의를 주도해 배가 산으로 가게 될 때 생기는 ‘시간 낭비, 에너지 낭비, 인력 낭비’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은다.

해당 건축심의에 직접 참여한 건축사는 “언성을 높이며 왜 그 지적이 말이 안 되는지 설명을 해 최악은 피할 수 있었지만, 심의를 받는 이가 심사위원보다 실력으로 한 수 위인 경우가 많다”며 “도면을 제대로 못 읽는 심의위원이 디자인을 지적하거나 법령 이상의 기준을 자의적으로 적용해 강요하는 심의 관행으로 좌절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행법상 건축심의 관련해 ▲심의 시 제출 설계도서 ▲심의절차 및 방법 등 필요 기준을 제시하는 ‘건축위원회 심의기준’이 고시돼 운영되고 있지만, 일부 심의위원들의 주관적·자의적 의견으로 인해 설계자의 설계의도가 훼손되거나 사업기간이 길어져 피해를 입는 사례가 여전하다. 2019년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내놓은 ‘건축허가 및 심의절차 선진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건축허가 관련한 심의, 평가, 인증 및 협의·검토는 현재 총 54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국내 심의제도가 정부 부처 및 부서 중심으로 지속 생겨난다는 점이다. 건축물의 성능향상을 목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에 대해 심의 또는 인증을 의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도의 운영부처나 부서가 대부분 목적에 따라 별도로 운영하는 탓에 유사·중복되는 사례도 많아 과다한 행정 비용과 더불어 심의위원·공무원과 민원인 사이 유착, 부정·비리도 적지 않다.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는 “건축심의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은 지적사항의 객관성과 검증을 위한 제도적 장치가 부재하고, 대부분 건축사와의 심도 있는 의견 교환 없이 제한된 시간과 제출되는 도서만으로 의결하는 운영방법 때문이다”며 “심의를 반드시 해야 하는 명확한 범위를 설정하고, 유사 심의를 통합하는 등 근본적으로 심의 절차가 간소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협회가 대선 이후 4월 경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의원과 건축심의 제도 관련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 정책토론회를 개최해 제도개선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