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근익의 건축시평] 의무가입 시대의 건축사 윤리

2022-02-21     손근익 건축사
손근익 건축사

영국의 철학자 홉스는 그의 유명한 저서 ‘리바이어던’을 통하여 “사회계약”이 국가의 기원이라는 이론을 정립하였다. 국가가 없다면 우리는 무한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대신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안전은 스스로가 지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국가를 탄생시킨 사회계약의 목적은 사회 내부의 무질서와 범죄 그리고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초창기 국가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국가가 나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신 개인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등 일정한 의무를 수용할 것을 합의하는 계약인 것이다. 우리는 소말리아, 시리아 그리고 예멘의 상황을 지켜보며 국가의 기능이 마비 또는 약화될 경우 어떠한 재앙을 초래하는지를 확인하였다. 이러한 혼란과 무질서 그리고 위험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유일한 합법적 물리력을 국가가 보유하며, 국가는 군인, 경찰, 검찰 그리고 사법부의 이름으로 이를 행사한다. 특히. 사법부의 권위가 바로 서야 법질서를 확립하여 선량한 시민을 보호함으로써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인 도덕이나 윤리는 강제성이 없으며, 따라서 선인(先人)들께서는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한 도덕 국가를 이상적인 국가 의 형태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인류사회 는 도덕에만 의존하여 지탱할 만큼 도덕적이지 않기에 최소한의 행동 규범을 법률로서 정하여 강제하고 있다.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나 규범’으로 서의 윤리나 국가가 정하는 법률 이전에 각종 단체나 집단에서는 최소한의 질서 확립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강제력을 부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바 ‘징계위원회’나 ‘윤리위원회 ’가 이에 해당한다. 징계위원회가 법규의 위반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강한 반면 윤리위원회는 윤리위반까지를 포괄하는 보다 넓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협회는 중앙윤리위원회와 시도건축사회 윤리위원회를 설치하여 2심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중앙윤리위원회에서 처분한 사건 중 하나인 아래의 사건을 돌아보며 협회 의무 가입 시대에 바람직한 건축사 윤리에 대한 졸견을 밝히고자 한다.

# A 건축사는 원로급의 건축사다. 그 사무소의 직원이 ‘건축사 000’이라고 명시된 명함을 사용하여 건축주와 상담, 수주, 설계, 감리 등 일련의 건축사 업무를 수행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명함 배포뿐 아니라 ‘건축사 000’라고 표기한 도면을 사용하였고 사무소에는 건축사 명패까지 비치하고 철저하게 건축사를 사칭하여 건축사 업무를 수행하였다. 건축사의 자격에 의문을 품은 건축주의 제보로 문제가 드러나기 전까지 A 건축사는 당해 현장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으며 건축주를 만난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중앙윤리위원회에 심의 결과 자격(면허) 대여에 관한 혐의가 입증되어 ‘제명’ 의결되자 이사회 상정 직전에 자진 폐업하였다.

건축사 면허대여 혐의로 중앙윤리위원회 에서 제명 의결한 최초의 사례라 할 것이다. 그러나 건축사 자격등록 취소에 해당하는 사항(건축사 자격대여)으로 윤리 심판 중인 건축사가 자진 폐업할 경우에는 피청구인이 협회 회원의 자격이 소멸되어 법리상 ‘각하’ 처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우려가 있다. 때문에 자격등록 취소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자진 폐업 시에도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징계 요청이 가능하도록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협회 의무가입 시대에 권리 주장에 앞서 스스로 새로워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윤리 강화를 통한 자정 노력이며, 전국적으로 적지 않은 자격(면허)대여 문제의 해결이 그 첫 번째 과제라 생각한다.

협회에서는 ‘건축사 자격대여 유형 및 제도개선’에 관한 연구를 완료하여 이에 대비하고 있다. 윤리기능 강화와 공정성 담보를 위하여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의 과반수를 ‘관련 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된 사람을 위촉’하고, 중앙윤리위원장은 외 부인사가 맡도록 개정 중이다. 그리고 중앙윤리위원회 산하에 ‘건축부조리 신고 센터’와 ‘조사위원회’를 두어 신속하고 효율적인 윤리심판이 이루어지도록 조직을 개편하였으며, 그간 한번도 작동하지 않았던 ‘국토교통부장관 건축사 징계 요청’ 제도를 명문화하여 협회 자체 징계가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자정 노력의 일환이다. 이 모든 것은 협회 구성원 모두의 자긍심,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를 전제로 하 고 있다. 건축사의 사회적 지위 향상은 스스로 정화하고 새로운 모습을 보임으로써 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