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비스포크
‘비스포크(Bespoke)’라는 단어를 들어봤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낯설던 이 단어는 한 대기업의 가전제품 브랜드명으로 사용되며 모두에게 익숙한 단어가 됐다. 하지만 이 단어가 본래 맞춤정장을 뜻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나의 아버지는 ‘비스포크’를 만드는 분이었다.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양복을 지어온 아버지 덕분에 유년시절 양복점에서의 기억이 많다. 소파에 앉아 혼자 놀다가도 손님이 오면 재빨리 일어서서 손님의 치수를 재는 아버지를 숨어서 바라보았다. 그때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 것이, 어린 마음에도 자기 일에 집중하는 그 모습이 멋져 보였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손님을 똑바로 세워둔 채 연필을 입에 물고 줄자로 손님 온몸 구석구석 치수를 재 기록한다. 이어 밑그림을 시작으로 재단 삼매경에 빠진다. 큰 나무책상 위에 올려진 한무더기의 재단지 위에 알 수 없는 선들을 그려 본을 뜨고 손님과 신중히 고른 옷감 위에 초크로 다시 한 번 그려낸 뒤 유려한 가위질로 쓱쓱 천을 잘라낸다.
며칠 뒤 이 천조각들은 무명실로 헐겁게 엮여 손님 몸에 잠깐 걸쳐지게 되는데, 이때 아버지는 아슬아슬하게 손님 몸을 향해 핀을 찔러댄다. 그렇게 한참동안 핀을 꽂고 나면 누더기 같던 옷에서 불필요한 주름은 사라지고 손님의 체형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용도와 취향에 맞게 옷의 형식을 제안하고, 낯빛에 어울리는 옷감을 골라주고, 옷감과 어울리는 단추를 찾아내고, 어깨에 비해 허리가 가느다란 누군가를 위해서는 그 사이 자연스러운 선을 그려 이어주고, 혹시라도 나중에 체중이 불면 옷이 불편하게 될 것을 고려해 여유 시접도 충분히 만들고, 재단사인 우리 아버지가 매일같이 하시던 일이다.
난 이제 막 독립해 세상에 덤벼든 새파란 건축사다. 얼마 전부터 미래를 잘 헤쳐 가기 위해 필요한 중심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이 찾아왔다. 어떤 가치를 갖고 어떤 자세로 건축사로서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다 우연히 내 어린 시절 양복점에서 본 아버지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께서 비스포크를 만드신 과정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많이 닮아있었다.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공간을 구성해 제안하고, 그 공간을 더 풍성하게 해줄 기법과 재료를 선택하고, 추후 쓰임새나 사용자가 바뀌더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유연함을 더해놓는 일, 그것이 아버지가 양복을 만드신 것처럼 내가 건축사로서 해야 할 일이다.
낡았지만 잘 맞고 편안해 자꾸 손이 가는 오래된 옷처럼 누군가에게 혹은 어딘가에 꼭 맞는 편안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 던져지는 고민들을 모른 척하지 않을 테다. 타성으로 해결하지 않겠다. 표준을 핑계로 끊임없이 핀을 찔러 다듬는 일에 게으르지 않겠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핏하고 힙한 것을 좇는 요즘, 마치 이름뿐인 비스포크로 몰개성한 주방의 모습들을 찍어내고 있는 주체가 바로 나는 아닐까, 이 일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자문해보기로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