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행복한 도시 프로젝트

2011-10-16     신경선 건축사

16년 전의 일이다.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토요일 오후, 지하철 3호선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당시 임신 6개월로 티는 않아도 계속되는 입덧에 지쳐 지하철 손잡이에 간신히 의지해 있었다. 종로3가역에서 술에 취한 취객이 탑승하더니 내게 몸을 밀착시키며 시비를 걸어왔다. 어수선하게 삐져나온 셔츠, 붉게 충혈 된 눈, 험상궂은 인상을 한 사내가 무서워 옆 칸으로 이동하는데 따라오기 시작했다. 승객들은 멀거니 구경만하고 계속 옆 칸으로 이동할 수도 없어 안국역에서 지하철 문이 닫히는 타이밍에 재빨리 내렸는데, 따라 내리는 것이 아닌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뛰다시피 개찰구를 빠져나오며 몹시 난감했다.

안국역은 지하도가 길고 깊어서 많이 걸어야 하는데다 지하철 말고는 집까지 갈 길이 막막했다. 다시 지하철을 타거나 경복궁역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사내가 계속 따라왔다. 때마침 지하철역을 순찰하는 의경들이 있어서 도움을 요청했더니 답변이 기가 막혔다. 둘 다 경찰서로 같이 가서 시비를 가려보자는 거다...... 맙소사!!! 나는 애절하게 “내가 지금 임신 중이니 저 사람을 5분만 붙들고 있어주면 빨리 이 자리를 피하겠다”고 호소했다. 의경들이 그 사내를 검문하는 동안, 나는 혹시라도 또 따라오면 어쩌나 연신 뒤를 돌아보며 냅다 달렸다. 배를 감싸 쥐고 경복궁역까지 바쁘게 걸어가는 동안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초겨울의 싸늘한 칼바람이 머릿속을 파고들고 거리를 황량하게 휘돌고 있었다.

 

2011년도의 서울은 안전한 도시일까?

서울시는 2008년부터 여성행복 프로젝트 6대 분야, 46개 사업을 시행 중으로 여성친화적 도시환경을 조성하고 양성평등사회를 구현해서 여성이 행복한 서울을 만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시정에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반영해서 도시생활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편, 불안, 불쾌한 요인을 해소하고, 여성이 수혜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행복한 도시를 직접 만들어가는 도시정책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여성 스스로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업은 여성행복시설 인증사업으로 2009년도부터 현재까지 시행하고 있다. 인증매뉴얼은 여성의 편의, 배려, 안전, 쾌적이라는 4가지 키워드로 개발되었고 여성친화시설, 유아편의시설, Universal 기준(무장애시설)을 만족해야 한다. 매뉴얼 개발, 평가, 심의까지 여성건축사, 시민프로슈머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서울시 여성정책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을 도와 여성친화적인 도시기반시설을 마련하기위해 애써 왔다. 지난 2년간, 평가현장에 동참하면서 도시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세상을 바꾸는 사업에 참여한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꼈다.

또 여성행복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의 시각과 인식이 여성을 존중하고 배려하고자 변화하는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지난 8월, 서울건축사회는 서울시 여성가족재단과 MOU를 맺어 <여성행복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건축사가 전문인으로서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왜 여자만 행복해야하냐?”고 반문하는 남성들이 많이 있는데 세부사업내용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며칠 후에 삼성동 코엑스에서 <한국건축산업대전2011>이 열린다. 서울건축사회 여성TF팀은 <여성행복 프로젝트 홍보관>을 운영하고 관련 세미나를 10월27일 오후1시30분에 주최하기로 했다. 왜 여성만 행복해야 하는 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이 참여해서 의구심을 풀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