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線)의 무게
글을 쓰는 시점을 기준으로 바로 전날(1월 11일)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건축물의 외벽이 무너지는 큰 사고가 있었다. 지난해 6월 학동 해체공사 붕괴사고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다시 한 번 같은 광주지역에서 발생한 사고라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웠다. 콘크리트 외벽이 무너져 내려 앙상해진 그 모습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아마 모든 건축사들이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20대부터 건축을 배우고 익혔고 지금도 건축 일을 하고 있어서일까? 사고 소식은 항상 놀람과 슬픔을 지나 지금 내가 얼마나 충실히 맡은 업무에 임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행여나 놓친 부분은 없는지, 잘못 판단한 부분은 없는지 온종일 지나갔던 프로젝트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건축사는 건물을 설계하고, 시공 과정에서는 잘 지어지고 있는지 감리하고, 시공 후에는 잘 지어졌는지 검사한다. 설계와 감리 그리고 사용승인 현장조사·검사 및 확인업무 이 세 가지가 건축사의 전문성을 드러내는 요소다.
이 모든 과정의 기준은 도면이다. 도면 말고도 시방서, 보고서 등 건축사가 준비해야 할 서류가 많지만, 도면이야말로 전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사 자격시험 역시 도면을 잘 그려야 높은 점수를 받는다.
도면에 직접 그린 선들이 건물이 되는 과정은 건축사가 된 최근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나간 감리현장에서, 선이 기초가 되고 벽과 기둥이 되고, 단열재와 외장재가 붙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리고 있는 도면의 무게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건축사가 도면에 그리는 선 하나하나는 단순한 선이 아니라 소중한 우리 삶을 담는 공간이 된다. 감리는 건축사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수록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에서도 완공되고 사용될 때에도 더욱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건축사가 받는 설계비는 허가나 준공 같은 결과에 대한 것이 아닌 치열한 고민과 생각의 시간 그리고 책임에 대한 대가일 것이다.
“도면에 그리는 선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는 선은 벽이 되고 창문이 되고, 사람이 사는 공간이 된다, 건축사라면 그 선의 무게를 알고 책임질 수 있어야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도면에 선을 채워가던 학창시절 교수님께서 알려주셨고, 지금 나 역시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나 역시 책임질 수 있는 선을 그리는 건축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