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속의 꿈
국내 건축물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시설이 주거시설이다.
주거시설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면서 그 사회를 고스라니 투영하게 된다. 이러한 주거시설들은 일컫는 명칭, 그자체가 해당 시설의 상황이 적나라하게 표현되기도 한다. 하모니카하우스(일명벌집), 코쿤하우스, 판자집 등이다. 또한 이러한 명칭들 중에는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가 바뀌기도 하고 명칭 자체가 없어지기도 한다.
과거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였던 ‘맨션’은 이제 조그마한 다가구주택에 따라 붙는 이름이 됐다. ‘빌라’라는 명칭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고시원’이라는 주거 아닌 주거가 이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주거형태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고시원은 주거시설이 아닌 숙박시설로 분류된다. 과거 고시원은 말 그대로 고시생들의 공부방이었다. 하지만 이제 고시원에는 고시생들이 없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 듯... 책꽂이에 가득한 법전과 꼬질꼬질한 파란색 트레이닝복으로 대변되던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이제는 일용직 노동자와 상경 대학생, 주거비가 모자라는 직장인들이 고시원의 대세가 됐다.
고시원에서 고시생이 사라지자 새로 고시원 건물이 들어서려 하면 이웃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늘었다. 주거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다. 사고도 잦아졌다. 2008년 7월 용인의 고시원에서 불이나 7명이 희생됐다. 같은 해 10월에는 서울 논현동 고시원에 살던 30대 남자가 고시원 건물에 불을 지르고 흉기를 휘둘러 6명이나 숨졌다. 지난해 9월에도 서울 신천동 고시원에 불이 나 1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2011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내 주거 취약게층은 1만 9388세 대 2만1947명으로, 전국 주거 취약층 3만 7233세대 중 52%, 전국 4만 5743명 중 37.9%에 이른다고 한다. 그 중 고시원에 사는 사람은 1만 1767세대, 1만 2513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돈이 없거나 모자란다는 것뿐이다. 그들도 저마다 꿈을 꾸고 있다. 과거 고시생들은 고시원 쪽방에서 입신양명(굤身揚名)을 꿈꾸었다. 고시생은 아니지만 이들도 꿈은 있다. 이들의 꿈은 지켜져야 한다. 이번 고시원의 용도강화 정책이 저소득층 거주의 안전성 확보에 밑거름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