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적 평등 넘어 생활 속 여성정책으로

2011-10-01     서영주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정책개발실장

그 시대의 정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과 변화, 이에 따른 국민들의 정책 욕구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정책이 이러한 변화들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의 요구와 변화를 담지 못하는 정책은 정책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여성정책도 시기적으로 그 대상이나 정책방향이 변화돼 사회 모든 영역에서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이루려는 노력들을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양성평등 사회구현 등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향상과 법․제도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법․제도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일상의 삶에서 느끼는 평등한 생활환경 조성은 아직 미진하다. 여성들은 여전히 밤길을 다니는데 두려움을 느끼고, 공연이 끝난 화장실 앞 긴 줄에 한숨 쉰다. 무엇보다 여성의 사회참여도는 높아졌지만 가사와 양육은 여전히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결혼한 직업여성들은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하면서 슈퍼우먼이나 알파우먼이 돼야 하는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차라리 결혼을 하지 않는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들, 소위 골드미스나 스완족이 늘고 있는 것도 결국 이 때문일 것이다.

최근 세계의 여러 도시에서 ‘여성친화적인 도시가 모두가 살기 좋은 도시’라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성친화도시(Women Friendly City)란 도시정책과 발전과정에 남녀가 동등하게 참여하고 그 혜택이 양쪽에게 고루 돌아가도록 해 일상생활에서 성별차이가 없도록 하는 도시 조성개념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세상의 변화에 발맞춰 기존의 여성정책이 추구하는 평등을 넘어 일상생활에서 여성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여성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들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서울시 여성정책으로 대변되는 여성행복프로젝트는 여성이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시정(市政) 전반에 여성의 관점과 경험을 반영했다. 여성들이 생활 속에서 느끼는 불안, 불편, 불쾌한 요소를 없애고, 여성친화적 사회․문화 환경을 구축함으로써 여성의 권익향상 등 삶의 질을 높이려고 했다. 여성정책이 관념속의 정책이 아닌 실천하고 있는 정책으로 진일보하게 된 것이다. 즉, 여성정책을 여성관련 부서만의 정책으로 국한하지 않고, 각 실․국․본부에서 교통, 도시계획, 주택, 문화, 산업 등 분야별로 시정 전반에 여성의 경험과 시각을 반영하는 사업으로 확대․추진하고 있다.

특히 기본적인 여성편의 시설인 화장실, 주차장, 길, 공원 등에 대한 인증제의 실시는 여성친화적 도시환경구축에 한층 더 접근하고 있다. 여성행복시설 인증제란, “도시생활에서 여성의 만족도를 개선하고 지속가능한 도시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주차장, 화장실 등 주요시설에 ‘여성행복’에 대한 개념을 도입해 이를 공적으로 인증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를 위해 화장실, 주차장 등 각 시설별로 체계적이고 표준화된 인증매뉴얼과 평가지표를 개발했다. 이를 근거로 시설 기준을 작성하고 여성행복시설 인증제를 시행해 현제 서울 시내에는 350여개의 여성행복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다.

이와 같은 매뉴얼 개발과 현장평가에 여성건축사의 헌신적인 참여와 노력이 없었다면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은 사실 불가능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노력들은 여성행복프로젝트가 UN 공공행정대상(UN Public Service Awards, UNPSA)을 수상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다.

앞으로 10월 하순 코엑스에서 열리는 한국건축산업대전에 이러한 내용을 담은 여성행복 프로젝트 심포지엄을 개최해 그간의 성과와 과제들을 논의할 예정이다.

패션, 문화, 금융 도시 뉴욕을 방문했을 때 그 화려함과 웅장함에 잠시 기가 눌렸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세계적 명소인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에서 본 화장실의 긴 줄과 비(非)여성친화적 시설을 보고, 그래도 서울이 뉴욕보다 더 여성친화적인 도시라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울의 이런 노력들이 지속된다면 서울은 여성들이 살기 좋은 도시, 모두가 함께 살기 좋은 도시로 자리매김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