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 정치·철학 용어다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 화두로 떠오른 철학적 단어들이 있다. ‘정의’와 ‘공정’이 그렇다. 단어가 주는 청량감과 매력적인 이미지로 인해 기관이나 정당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이 우리 생활의 기준이 될 때 논란이 된다. 어려울 것 하나 없는 단어임에도 그렇다. 예를 들면 ‘착한’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이런 단어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관념적 표현으로 다양한 인과관계·현상의 복합적 상황을 이해하는 단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는 ‘착한’ 사람이라는 용어는 대체적으로 사람 간의 관계와 느낌 등의 각종 인과 관계에 대한 판단에 반응해 사용한다. 정의나 공정이라는 단어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는 가치와 인식이 이런 관념적 단어에 반응하는 고등사회다. 정치와 정책의 한복판에서 이런 관념적 단어들이 강력한 캐치프레이즈로 사용되고 있다.
당연히 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수십 년간 해왔던 절차와 업무임에도 최근 들어서 크게 부각되고 있는 공공기관들의 ‘공개적인 일반 설계공모’ 업무가 그렇다. 공공의 영역이 커지고, 공공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건축산업 전반에서 공개경쟁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밀실에서 짜고 치는 형식으로 일할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서류를 나중에 맞추는 형식이 횡행했던 부조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사실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해서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우수한 건축 작품이 선정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문제 삼긴 어렵다. 오히려 건축계에는 반가운 일이다. 문제는 민간건축시장이 악화되면서 공공건축시장에 뛰어드는 시장 참여자의 경쟁에서 시작된다. 몇몇 건축사사무소는 공공이 아니면 생존이 어려운 회사도 많다. 바꿔 말하면, 공공발주업무로 회사의 운명이 결정 난다.
사실 민간건축은 발주처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면 참여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반면에 공공건축은 누구에게나 문호가 개방되어 있어 특별한 인맥이나 인과 관계 없이도 참여해서 실적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시장이다. 민간은 자유시장 경제를 선택하고 있는 만큼 발주처의 개인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그래서 발주처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반면에 공공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적 과정이다. 문제는 공공이 어느 정도의 범위까지 직접 집행하고 진행하느냐다. 이때 ‘공정’이라는 단어가 크게 부각되면서 위력을 발휘한다.
‘공정’에 의문이 없는 경우는 숫자로 정량화될 경우다. 문제는 정량화가 불가능한 때 생긴다. 설계공모가 그렇다. 창의적 성과물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숫자로 객관화한다고 하지만, 창의적 성과물에 대한 판단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바로 이런 논란과 관련해 참고할 사례다. 늦게 도착한 심사위원에 대한 부분은 차치하고, 예른 웃손의 당선은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이를 심사한 에로 사리넨의 강력한 선택은 당시 건축계에서의 그의 권위로 인해 가능했다. 하지만 진행되는 내내 논란이 있었고, 결국 규모가 축소되면서 예른 웃손은 호주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거의 이십 년이 지나 호주 정부는 그에게 사과를 하게 된다. 충분히 공정 논란이 될 만한 상황이었다. 과연 우리에게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어떻게 될까?
‘공정’은 이런 권위가 없는 상황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몽상적 단어가 된다. 권위를 세워 공정의 정의를 실현하고 건축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건축계 모두가 각성해 그 길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