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리모델링 and 건강 리모델링
기억을 더듬어 보면, 꼭 마흔 살이 된 무렵부터 병원 찾는 일이 잦아졌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편도선염으로 병원이란 곳을 가본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마흔이 되도록 어디 아파서 가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부고를 접하고서 찾는 정도였는데 그러나 그곳도 '병원'과는 다른 이름이니 병원에 갔다라고는 할 수 없겠다.
마흔이 된 이후로는 환절기마다 감기에 걸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비염, 고지혈, 전립선, 시력 노화 등등... 가장 최근에 만난 녀석은 목 디스크다. ‘수술’할 돈은 없고, ‘시술’을 받았다.
시원찮다. 얼마 전 멀지 않은 곳에서 리모델링 의뢰가 들어왔다. 현장에서 만나기로 하고 운전하며 이동하는데 그날따라 신호 대기가 많았다. 우두커니 신호를 기다리는데 문득, 남의 집 리모델링하는데 따라다니기 전에 내 몸 리모델링하는 것이 우선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도 육체도 세월 앞에선 약자다. 좀 거창하게 보면 역사가 주는 겸허한 진리이겠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아파트 교체 수명이 약 27년으로 가장 꼴찌란다. 일본이 54년, 미국 72년, 영국은 무려 128년이나 된다. 허약한 아파트를 가진 나라 국민이라서 내가 아픈 곳이 많은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언론이 사용하는 표현을 보더라도 30년 이상 되면 ‘노후아파트’다. 철근콘크리트의 수명이야 100년을 간다고 해도 주거생활에서 가장 피부로 느끼는 노후도는 잘 알다시피 설비들의 노후다.
수도에서 녹물 나오고 하수구, 양변기가 자주 막히고 정전이 잦고 냉난방 효율도 떨어지다 보면 콘크리트의 수명 따위엔 관심 없이 새 집을 찾게 된다. 일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서 리모델링 해보겠다고 알아보니 콘크리트 속에 매립되어 있는 배관들을 뜯어내지 않고는 공사가 안 되고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게 현실이다. 리모델링해보겠다 먹었던 마음은 접히고 신축으로 가버리고 만다.
구조 안전에 문제가 없는 집을 허물고 새로 지으면 사회적 자원 낭비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얼마 전엔 세종시에 100년 수명을 목표로 한 아파트가 준공되기도 하였다. 철근 피복 두께 등을 키워서 내구성을 높이고, 수리·교체가 쉽도록 전용 설비공간을 두었다. 자원 양도 쪼그라들고 있는 오늘날, 수명이 긴 주거로서 정착되고 성공하기를 빌어본다.
콘크리트도 30년 지나면 ‘노후’자가 붙으니, 40년 사용한 육체가 슬금슬금 아프게 되는 것도 이상하진 않은 것 같다. 사람의 신체 건강관리도 아프면 고치면 된다. 잘 알다시피 요즘 의학이야 그 발전이 눈부시지 않은가. 그러나 문제는 역시 경제력이다. 좋은 약 먹으면, 간단한 수술이면 나을 수 있는데 그게 불가능한 현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과 나라들이 많다. 당사자들은 얼마나 낙심할까. 그렇다고 신체를 건물처럼 신축할 수도 없으니 더욱 절망스러울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 체계가 잘 잡혀있어서 다행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스템을 잘 활용하면 ‘건강 신축’에 버금가는 ‘건강 리모델링’이 가능할 수 있겠다. 필자는 내년이면 쉰 살인데 근래 ‘건강 리모델링’을 꾸준히 해왔더니 고지혈은 어마 무시하게 좋아졌고 디스크는 한 50%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독자들 중에 저더러 오십도 안 된 팔팔한 사람이 뭐 그리 엄살이냐고 타박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생활해온 환경이 달라 건강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외람됨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란다. 또는, 스스로 감추지 마시라. 겉으론 건강한 척하면서 허기가 가실 정도로 많은 약을 몰래 복용하고 있는 동료 건축사들을 많이 봐왔다(ㅠ).
몹쓸 전염병이 지난하게 온 세상을 헤집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 건축사들의 삶과 사업에도 적잖게 주름이 생겼을 것이다. 내년에는 수주도 많아지고 활기차고 행복이 넘치고, 주름이 쫘~악 펴지는 새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훠~이 훠~이 송년하시고, 연말연시 평안하소서! (참! 새해엔 금연하시라. 건강 리모델링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필자는 내년 1월이면, 금연 11주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