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아카이브
신라 진평왕은 591년 경주 남산신성을 축조함에, 비를 세우고 서약식을 행하였다. “신해년 2월26일 남산신성을 쌓되, 만든 지 3년 안에 무너지면 죄로 다스릴 것을 서약 한다”는 비문 아래에는 촌락별 공사구간이 몇 보(步) 몇 척(尺) 몇 촌(寸)까지 정확히 기록되고, 담당관과 촌주 그리고 공사 책임자와 기술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공사 책임을 묻기 위한 면이 강하지만 조선시대 해미읍성이나 고창읍성 같은 성터에서도 지역이름이 새겨진 돌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기록을 중시하는 면 또한 크다 하겠다. ▲이러한 기록전통의 백미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축조기록으로써 역시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된 화성성역의궤이다. 계획부터 방법 기간, 기기, 수발문서 등은 물론 작명 없이 살아 온 인부들까지 부르는 그대로 이(李)작은놈, 지(池)악발 등으로 이름을 적고, 급여액수와 근무기간까지 세세하게 모든 것을 기록한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지금 국책연구기관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서는 건축기록물의 관리체계를 위하여 건축사들의 소장 자료 및 관리현황에 대한 기초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건축물뿐만이 아니라 건축사의 작업과정에서 생산된 건축기록물들까지도 공공의 귀중한 역사문화자산으로서 체계적으로 수집되고 보존 관리되어 후손들에게 계승함으로서 우리의 건축문화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목적을 밝히고 있다. 즉 체계적인 한국건축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해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아카이브란 특정 장르에 속하는 정보를 모아둔 정보창고쯤으로 풀이할 수 있는바,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미국 등 주요선진국들은 벌써부터 아카이브법을 제정하고 건축아카이브가 구성되어,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과 건축사의 건축기록물들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관리하고 있으며, 국가기록보존소에서 취급할 수 없는 개인건축물에 대한 기록까지도 훼손된 것은 복원하여 관리하고 있다. ▲최근 재독 건축학자 김은주 씨는 설계자 하딩의 서명이 들어있는 덕수궁 석조전의 원도를 일본의 지방도서관에서 찾아내어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이 기사가 신문에 나자, 국내외 아카이브에서 원도면을 찾지 못한 채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공사를 진행 중이던 문화재관리청은 반색을 하며 긴급 자문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김 씨를 불러 낸 이 회의가 ‘마치 국회의 청문회장 같이, 도면 검증은 뒷전이고 선배에게 도전하나 식’의 학계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행태였다”고 ‘ㅈ’일보의 ‘ㅎ’기자는 밝히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와 지자체가 체계적인 건축아카이브를 구축하는 것만이 이러한 추태를 없애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