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沙工)이 많은 배
개업한지 얼마 되지 않는 새내기 건축사가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방법은 녹록지 않다. 쌓아놓은 포트폴리오가 빈약한 이유로 매체 등을 통해 찾아오는 건축주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이 지인의 소개, 시공사의 소개로 연결되지만 그것도 아주 낮은 확률로 계약에 이르게 된다. 그마저도 같은 이유로 갑과의 용역비 협상에서 우의를 점하기 쉽지 않지만, 큰 그림을 위해서는 어찌 됐든 계약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빈약한 설계 계약 건수로는 원활히 사무소를 운영할 수 없기에, 결국 공공이 발주하는 ‘설계공모’라는 경쟁에 발을 담근다. 이것 또한 매우 낮은 확률로 ‘당선’이라는 영예를 차지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계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 시련이 찾아온다. 발주처마다 계약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매번 관련 기준을 습득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그리고 관계전문기술자(또는 공종업체) 용역비의 전체 내역을 산출해 보면 생각보다 처참한 건축사 용역대가 비율에 매번 놀란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는다. ‘공공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다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가졌음에 한번, 그래도 수금(收金)은 확실할 거라는 믿음에 한번. 이렇게 스스로를 격려한다.
사실 본격 시련은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다. 공공건축을 건립하는 사업에서 설계자의 열정과 의지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운동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제도의 문제는 아니다. ‘공공건축물’의 실질적 건축주는 한 명 또는 하나의 조직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전체 프로젝트를 감독하는 부서와 감독이 있지만 공종별 감독이 따로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문위원, 운영자, (실제) 사용자, 지역공공건축가, MP 등 각자의 위치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검토하고 의견을 낸다. (간혹 정치인이 프로젝트에 개입하는 슬픈 경우도 있다.)
이런 시스템은 공공 자본을 투입하여 시행하는 사업이다 보니, 프로젝트의 내용적 밀도를 높여주는데 분명히 효과가 있고 필요한 제도다. 결국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매번 매운맛을 맛본다. 발주처 내외의 사업관계자들의 의견이 유기적으로 공유되고, 정리된 주문으로 설계자에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총괄감독은 주도적인 자세로 의견을 취합하고 진두지휘해야 하지만 이를 매우 부담스러워한다. 기존에 해왔던 방식을 선호하며, 선례가 없는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최선의 결정을 물색하기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적절히 존중하는 차원에서 차선책 혹은 차차선책을 설계자에게 요구한다. 취사선택은 과업내용서와 계약서를 근거로 하는 것을 선호하지만, 건축 설계 업무가 매번 거기에 딱 맞는 근거를 찾기란 어렵다. 설사 과업 내용서에 분명히 명기되어 있는 기준이지만, 실제로 집행한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당하는 경우도 있다.
과업기간 중 이런 경험을 몇 번 하게 되면 설계자마저 애초에 갖고 있던 초심을 하나씩 잃어버리게 된다. 각자의 업무에서 나름의 고충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좋은 건축물을 남기고자 노력해야 하는 것이 건축사의 의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좋은 운동장도 분명 있었다. 더 나은 ‘공공건축물'을 만들고자 하는 발주처, 설계자 간의 파트너십이 있었으며, 상호 충돌되는 양질의 의견은 원활한 소통을 통해 상호 충족되는 방향으로 프로젝트에 살을 더해갔다. 제안된 새로운 의견은 각 공종감독, 자문, 운영자에게 유기적으로 공유되었고, 발생하는 많은 우려는 총괄 감독과 설계자의 긴밀한 소통을 통해 완화되었고 정리되었다. 조금 더 유연해지고 더 과감해졌으면 한다. 사공이 많다고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사공을 두고 바다에도 못 가게 만드는 상황은 앞으로 없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