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사(睡眠寺)
2021-10-06 함성호 시인
수면사(睡眠寺)-
전윤호
초파일 아침
절에 가자던 아내가 자고 있다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 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다
엄마 깨워야지?
아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자게 하자
매일 출근하는 아내에게
오늘 하루 늦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랴
나는 베개와 이불을 다독거려
아내의 잠을 고인다
고른 숨결로 깊은 잠에 빠진
적멸보궁
초파일 아침
나는 안방에 법당을 세우고
연등같은 아이들과
잠자는 설법을 듣는다
- 전윤호 시집 ‘늦은 인사’ /
실천문학사 / 2013년
한 집안의 풍경이 이렇다면, 우리에게 다가올 그 어떤 어려움도, 슬픔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사랑은 달콤한 입맞춤으로도, 따뜻한 포옹으로도 다가오지만 한 사람은 자고 다른 모든 식구들이 그 잠을 위해 “이불을 다독이며”, “잠을 고이”며 퍼져갈 수 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사랑이 사원이 되는 때, 아이들과 아내가 사원이 되는 사랑이 바로 그럴 때다. 그리고 일어나서 왜 깨우지 않았니, 그랬니, 하고 아웅다웅하는 사랑의 미래가 아울러 거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