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텍스트(context)를 전달하는 문화 활동으로서의 건축

2021-09-16     주성용 건축사 · 건축사사무소 주아키텍츠(JooArchitects)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주성용 건축사

작은 건축의 시작
어느 날 머리가 희끗하신 노년의 신사와 삼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성이 사무실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왔다. 어딘가 묘한 분위기의 두 사람 중 어르신은 이내 나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관찰하는 느낌이었고 젊은 남성은 준비해온 노트북을 열고 건축의 절차나 비용들을 거침없이 물어보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몇 개월은 집을 짓기 위해 열심히 준비한 듯 보였다.
80년대 후반 주택보급률 확보를 위해 우리 도시를 덮었던 물량 중심의 다세대, 다가구 열풍(역설적으로 이 시기 이후 90년대를 거처 직능으로서의 건축사는 정점을 찍고 내려온다.)에 발맞춰 서울 변두리에 1필지를 소유하신 어르신은 노후화된 건물을 허물고 새집을 짓고자 하셨다. 아들 내외와 같이 그 집에 살면서 수익성도 확보했으면 하는 건물의 신축을 젊은 아들에게 맡긴 것이다. 아들은 정보의 습득이 용이한 젊은 세대답게 설계가 가장 중요하다며 설계비를 아낄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지금의 건물이 너무 보기 싫다며 테라스와 중정이 있고 다락과 높은 층고를 갖는 집에 살고 싶다고 한껏 들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어르신의 직업은 공인중개사셨고 공사비 이외의 들어가는 과다한 비용(?)에 대해 당최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이셨다.

텍스트(text)를 구축하다 : 
구축된 건축은 텍스트(text)로 읽힌다

우리나라 택지구획사업으로 인한 소형 필지의 크기는 평균 165∼231제곱미터(50평∼70평)다. 이러한 대지에 자리 잡는 하나의 건축물이 텍스트(text)를 구축하는 시작이 된다. 이 작은 텍스트(text)의 시작은 궁극적으로 군집이 되어 마을을 이루고 근린이 되며 도시의 이미지를 구축한다. 우리는 이렇게 구현된 텍스트(text)를 통해 나라별 도시의 특징과 거주의 문화를 읽어내기도 한다. 구축된 건축은 결국 텍스트(text)로 역사에 기록된다. 우리 마을의 근린을 형성하는 텍스트(text)에 대한 기억은 어떠한가? 길, 공원, 거리, 건축물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이다. 이러한 텍스트(text)를 이해하려면 컨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텍스트(text)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당시의 시대상이 구현된 결과가 모두 컨텍스트(context)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경우 우리 주거지역에 즐비한 과거의 욕망으로서의 텍스트(text)는 우리의 문화를 대변하기엔 심각하게 부끄럽다. 과거의 텍스트(text)를 무분별하게 비판할 생각은 없다. 이 또한 우리의 기록이자 문화이며 역사이기 때문이다.

건축은 복잡하고 중요한 문화활동
우리는 이러한 텍스트(text) 대변환 시기에 직면해 있다. 건축 행위를 통해 우리는 미래의 텍스트(text)를 구축하고 있으며 후대에 컨텍스트(context)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2020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Grafton Architects의 이본 파렐(Yvonne Farrell)은 “건축은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중요한 문화 활동 중 하나다. Architect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가장 중요한 문화 활동의 하나로서 텍스트(text)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텍스트(text)를 비판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면 미래의 문화적 가치로서 새로운 텍스트(text)를 구축해야 하는 의무 또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컨텍스트(context)가 있는 건축을 짓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