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계의 의전 ‘사용승인 업무대행’
최근 인터넷 기사에 ‘황제 의전’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 사진으로 인해 예전의 ‘황제 의전’까지도 다시 기사화되고 있어서 그냥 피식하고 웃는다. 마침 글쓰기를 의뢰받고 예전 생각들을 되새기면서 건축계의 이야기도 살짝 하려 한다. 주로 소형 건축물의 설계로 회사를 운영하는 나는 전국 각지에 준공작이 있다. 이 말은 전국 각지에서 특검(사용승인 업무대행)을 받아봤다는 이야기다.
경험 #1 _ 사무실 개소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A 지역에 사용승인을 신청하고 특검자를 지정받고 전화를 했다. 특정 시간을 서로 맞춰 만나기로 했다. 특검 시에는 항상 설계자는 죄인(?)이니 30분 전에 나갔다. 현장에서 40∼50여 분을 기다려도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다. 시간에 맞춰서 사무실로 데리러 오지 않았다고 욕을 먹었다. 아∼ 의전을 했어야 했구나∼! 한참을 달려 사무실로 가 특검 건축사를 태우고 다시 현장으로 이동하고 다시 사무실로 데려다 드렸다. 그 차 안에서의 서먹함과 혼자 돌아오는 길에 우울함은 몇 년이 지났음에도 기억난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자괴감이란 걸 한참 후에야 알았다.
경험 #2 _ 이 기억도 몇 년 전이었다. B 지역에 사용승인을 신청했다. 작은 단독주택이었고 내가 감리도 진행했다. 특검자가 현장에서 온갖 트집을 잡았다. 도대체가 왜 그러는지 그 순간에는 같은 건축사로서 이해를 못 했다. (차이가 있다면 내가 좀 더 젊었다는 것.) 불법이 없는 건물도 이렇게 난도질당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너무 답답해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왜 감리를 직접 했냐고” 이야기하고는 “이것저것 모두 맞는지 체크할 수 있게 재확인하고 도면을 사무실로 가져다 달라”라고 하고는 사라졌다. 울분에 차서 운전하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흘린 것은 눈물이 아니었고 분노였던 것 같다.
경험 #3 _ C 지역에 사용승인 신청을 했는데, 사무실로 도면을 가지고 와 달라 해서 시간 맞춰 갔더니 특검 건축사는 없고 직원이 도면을 보고 이건 어떻네, 저건 어떻네 크리틱을 하면서 ‘지랄’을 떠는데, 맘 같아서는 아구창(?)을 날려버리고 싶은 걸 꾹 참고 돌아왔다. 특검 일시도 불시에 연락이 와 근처에 있는 건축주가 출동을 했는데 집안을 둘러보는 내내 “왜 서울에서 설계를 했느냐?, 여기도 설계 잘하는 사람 많다!, 거실이 작아서 못쓰겠다!, 설계가 이상하다!”는 말을 한참을 하고 갔다고 한다.
경험 #4 _ D 지역의 건축사가 서울에 설계를 하고 사용승인 신청을 했고, 내가 특검자로 지정이 되었다. 다가구 주택이라 도면과의 일치 여부는 20분 정도면 다 파악할 수 있다. 사용승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나도 바쁘다. 빨리하고 가야 한다. 구청으로 향하는 길에 슬그머니 봉투를 내민다. D 지역에서 서울에 설계하셨으면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해된다. 그리고 사용승인 받기 전에 얼마나 또 부끄러움을 무릎 쓰고 봉투를 내미셨을까,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괜찮습니다. 이런 거 하지 말고 앞으로 하시죠? 저도 타지역에서 특검을 하도 많이 받아 봐서 그 두려움을 압니다. 두려울 때야말로 정공법입니다. 건물 너무 잘 설계하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는 이야기만 하고 돌아섰어야 했는데…. 마지막으로 “저 생각보다 돈 잘 법니다”라는 거짓말까지 하고 구청으로 향했다.
특검자들은 은근히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 권력으로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지역건축사회의 욕망과 한을 풀려고 하는 건축사들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그러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할 “우리”가 몇이나 될까? 특검은 철저히 서비스 영역이며 자신의 맡은 바 역할만 기술적으로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사람도, 나이도, 지역도 배제되어야 한다. 건축사가 아니면 누가 도면과 실제 건물을 몇 십 분 만에 다 확인할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매우 전문적이고 기술적인 것이다. 거기에 이것저것 덧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스로 대우받는 건축사이고 싶으면 상대 건축사를 대우해 줘야 한다. 또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라리 다 같이 뭉쳐서 특검의 단가를 올리는 보이콧이라도 하는 게 더욱 정당하지 않을까? (사실 갑자기 시간 내서 현장보고 구청 들러 전달하는 등의 비용이 너무너무 박하다.)
사용승인 업무대행 시행 후 불법 건축물이 현저히 줄어드는 등 긍정적인 점도 많은 반면 이로 인해 지역 간(혹은 지역건축사회 간) 갈등은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 같다. 어떤 방법으로든 이 갈등의 문제는 차츰 해소되어져야 한다. 나도 2년간 특검을 하면서 정말 좋은 디자인의 건물도 구석구석 볼 수 있었고, 내가 해보지 않은 다른 용도의 건축물을 구경하고 도면을 볼 수 있었다. 또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등등 스스로의 경험적 측면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또한, 명함도 주고받으니 타지역 건축사를 알게 되는 기회도 가졌다.
대한건축사협회가 관행적으로 굳어진 업무대행 폐해 등 건축계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건축부조리신고센터’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건축사협회 누리집 ‘건축 부조리 신고센터’에서 신고 등록) 불법·부당 사례, 온당치 못한 것을 한꺼번에 일소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 너와 나가 아닌 우리 건축사라는 공동체 모두가 의지를 갖고 바꿔나가야 할 일이다.
* 위 기술한 이상한 특검의 경험보다 훨씬 많은 스마트한 특검자들도 만났었다. 모두가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안 좋은 몇 가지의 경험이 너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