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의 양면, 선택의 위험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일본의 전투기 조종사들은 공중전에 나설 때 대부분 낙하산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낙하산은 모든 조종사에게 지급된 필수 안전장비였다. 낙하산이 모자라거나 아까워서가 아니라 조종사들이 자발적으로 낙하산을 메지 않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공중전에 참가하면서 최후의 생명줄인 낙하산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생존한 조종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이 낙하산을 착용하지 않은 이유는 다소 엉뚱했다. 공중전을 벌일 때 낙하산의 고리와 연결 끈이 팔다리를 기민하게 움직이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중전에서 최대의 위험은 적기에 의해 격추되는 것이다. 그런데 낙하산을 메고 있으면 조종석에서의 움직임이 둔해져 격추될 위험이 커진다. 낙하산의 존재 이유는 최후에 조종사의 생명을 지켜 주는 것인데 바로 그 낙하산 때문에 공중전에서 생명을 잃을 위험을 무릅써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일본 조종사들은 격추될 위험과 마지막 안전장치를 포기하는 위험 가운데 후자를 택했다.
한 가지 위험을 줄이면 다른 위험이 커지는 사례는 주변에 많다. 지하철은 대체로 안전한 교통수단으로 꼽히지만 때때로 큰 사고가 나기도 한다. 만일 심각한 지하철 사고가 일어난 뒤 지하철의 안전도를 높인다며 운행속도를 줄이고 배차간격을 넓힌다면 서둘러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은 지하철 대신 다른 교통수단을 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다른 교통수단들은 대체로 지하철보다 사고 위험이 크다. 지하철의 사고 위험을 줄이는 정책이 다른 교통수단에 의한 사고 위험을 늘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선 결국 어떤 위험을 더 크게 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저층 건축물 전용 구조설계 소프트웨어가 건축사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쉽고 빠른 업무처리와 당장 목돈은 들지만 머지않아 실익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하지만 검증되지 않아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언제 위협할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과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데 언제 발생할 지도 모를 한 순간의 위험을 상상하며 공익을 위해 개인의 이익을 접는 것, 이 동전의 양면 같은 상황이 눈앞에 벌어진 것이다.
비슷한 위험들 사이의 선택은 때로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위험의 선택'이 '선택의 위험'을 부르는 형국이다. 건축사들은 어떤 위험을 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