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
2021-08-03 함성호 시인
지문
- 유용주
아버지는 두 시간 일찍 나갔다
눈이 허벅지까지 쌓인 새벽이었다
첫 차는 일곱 시 넘어야 오는데
우묵 모자에 두루마기, 지팡이가 추위를 막지 못했으리라
차시간이나 약속을 잡으면
전날부터 준비한다 아예
차려입고 기다리기까지 한다
쇤네 근성은 내리물림이구나
- 유용주 시집
‘내가 가장 젊었을 때’ 중에서 /
시와반시 / 2021년
근대의 시간은 12간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시간을 24등분 하고, 그걸 다시 쪼개서 60분이라는 시간을 만들었다. 술시에서 해시라는 넉넉한 시간이 7시 8시 9시로 쪼개지면서 우리는 전혀 겪어 보지 못한 시간을 마주해야 했다. 더군다나 기차는 술시가 아니라 8시에 떠났다. 양반도, 벼슬아치도, 그 누구도, 그 냉정한 탈 것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아직도 그 이상한 시간에 긴장하고 산다. 그 시간에 10분이라도 늦으면 약속을 어긴 게 된다. 시간을 못 지킨 게 약속을 어긴 게 되다니. 우리는 기차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