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광야생활

2011-08-01     이유경 건축사

월급쟁이생활을 하다가 개업한 지 어느덧 10여년이 훌쩍 지났다. 경기가 좋았던 시절이 다 지나고 IMF 시기에 시작하다 보니 조그만 사무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대형 설계사무실에 있을 때는 일감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프로젝트도 대기업을 상대로 큰 규모의 것들만을 수행하다보니 수주 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다. 경기가 좋았기에 목표치 초과달성으로 보너스를 받는 일도 많았다. 매달 월급이 나오고 결혼전이다보니 경제적으로 부족한 상황을 만나보지 못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형 설계사무실은 온실 그 자체였다. 늘 일정한 온도와 필요한 영양을 제때 공급받고 벌레의 공격이 적은 온실. 거기에서 나는 좋은 열매만 맺어주면 되었다.

그러나 직접 설계사무실을 운영해보니 그곳은 황량한 광야였다. 더구나 가야할 길이 전혀 보이지 않고 언제 어디에 도착할 지 알 수도 없는 끝없는 고난의 여정을 계속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멈출 수도 없는 상황이다. 걸어온 길이 너무 많아 도중에 돌아갈 수도, 다른 길로 들어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설계사무실의 경제적 문제를 책임지는 수주에 어려움을 겪다보니 초창기에는 시행사에게 속고 당하며 휘둘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캐나다에 큰 프로젝트가 있다고 하면서 아주 구체적으로 위치와 규모까지 제시하는 시행사와 함께 캐나다 캘거리까지 다녀온 적도 있었고(결국은 사기꾼이었다) 무수히 많은 규모검토 도면을 그려주며 내공(?)을 쌓았다. 내가 부동산을 하는 건지 건축설계를 하는 건지 구분이 안될 만큼 전국의 땅만 보며 다닌 적도 있었다. 조그만 인테리어 설계에 공사까지 하면서 집주인에게 업자취급을 당하기도 했고 공사 거의 완료된 시점에서 폭우에 비가 새서 석고보드가 주저앉는 바람에 현장에서 밤을 지새며 눈물짓기도 했다. 설계비를 시장물건 깎듯이 계속 흥정하며 깎아대는 건축주를 만나면서 자존심 상한 때도 많았고 건축사를 부동산중개사나 보험설계사 정도로 생각하며 막 대하는 업자도 많이 봤다.

하지만 광야생활하면서 늘 사막과 척박한 땅만 걷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조그만 사무실에서는 꽤 크다고 할 수 있는 프로젝트도 경험했었고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며 얻은 노하우도 상당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생활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 한 발짝은 비켜서서 생활하는 여유가 있었다. 대학에서 풋풋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즐거움, 기분이 좀 꿀꿀할 때 눈치볼 것 없이 바람쐴 겸 강변을 따라 드라이브하는 기쁨, 애가 아플 때 곁에서 지켜주며 엄마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 등이다.

또한 여러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고 부족한 분야를 더 집중하여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지난해는 6개월간의 친환경 건축설계아카데미 1기 과정을 잘 마칠 수 있었고 디벨로퍼 과정도 재미있게 공부하며 이수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러한 고난과 즐거움의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개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말이다. 건축설계라는 직업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다.

입시 때 어쩌다가 건축이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어 대학생활과 대학원,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한 건축이라는 직업, 비록 남들이 말하는 성공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래도 난 이 직업이 좋다. 교회건축을 계획하고 있는 목사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좋고, 집 인테리어 하겠다는 친구에게 싸게 할 수 있는 팁을 줄 수 있어 좋고, 한 번도 똑같은 조건의 일을 하지 않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건축 일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다. 아직도 제대로 사회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건축사의 불투명한 미래를 생각하면 그렇고, 힘들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직업 특성상 사회의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많이 보게 될 것을 생각하면 그렇다. 이런 마음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똑같이 드는 생각이다. 소신있게 설계의 길을 가라고 외칠 자신이 솔직히 없다. 프로젝트 수주가 턴키베이스로 가다보니 설계자 위에 있는, 시공회사로 가겠다는 아이들을 말릴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건축사의 길, 건축사의 삶이 현재 의사, 변호사만큼 멋지고 폼나게 비쳐지는 무지개 빛 날이 오지 않을까? 건축에 몸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최대의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