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다운 방식 아닌 해체계획서와 다른 공기 단축 위한 무리한 공사···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는 ‘人災’

2년 전 잠원동 붕괴사고와 닮은 사건 건축사재난안전지원단 현장 급파, 현장 상황 파악하며 업무협조

2021-06-11     박관희 기자
6월 9일 발생한 건축물 붕괴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의 구조작업이 펼쳐지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소방안전본부)

광주광역시(이하 광주시) 학동 4구역 재개발 지역 내 건축물 해체공사 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됐다. 6월 9일 오후 4시 45분경 발생한 이 사고로 건물 앞 정류장에 정차해 있던 54번 시내버스 1대가 건물 잔해에 깔렸고,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9명이 숨졌다. 버스 기사를 포함한 8명은 중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소방당국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버스에 매몰된 요구조자에 대한 구조에 나섰고, 추가 피해자는 없는 지 밤샘 구조작업을 펼쳤다. 철거 잔해가 많아 제거 작업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권광태 경기도 건축사 재난안전지원단장을 비롯해 광주광역시건축사회, 광주광역시 건축사 재난안전지원단 등도 소식을 듣고 사고 현장을 방문했다. 일행은 자체적으로 현장 상황을 파악하고, 수사대·소방당국과 업무협조에 들어갔다. 해체계획서와 현장을 살펴본 권 단장은 “공기단축을 위한 무리한 공사 진행이 있었던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제하며, “안정적인 작업을 위해 롱 붐을 써야 하는데 효율이 떨어지니까 짧은 붐을 활용했고, 이를 위해 잔재물을 높게 쌓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권 단장은 “잔재물의 하중에 더해 불안정한 잔재물 위에서 작업하다 보니 전도 방지를 위해 중장비 역시 건물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면서, “이런 이유로 해체계획서와 달리 ‘탑다운 방식’으로 해체 작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권 단장은 이어 “해체공사가 쓰레기 처리 작업이 아닌데 그와 같은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은 아쉽고, 해체공사에 대한 분야별 업체들의 전문성도 떨어져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사고현장이 인도와 붙어 있으며, 차도와의 거리도 3∼4미터 가량에 불과하다. 대로변에 위치해 있어 해체 작업 간 항시 안전관리가 이뤄져야 했는데 비상주 감리계약을 한 건 아쉬운 결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사고현장에 건축사재난안전지원단이 급파됐다. (사진=광주광역시건축사회)

◆잠원동 붕괴사고와 ‘판박이’,
안전불감증이 낳은 예고된 인재(人災)


이번 사고는 2년 전 서울 잠원동 붕괴사고와 판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9년 7월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해체 중인 지상 5층 지하 1층 빌딩의 외벽이 무너지면서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붕괴된 건물 잔해는 신호대기 중인 차량 3대를 덮쳤고, 이 사고로 1명이 숨지는 등 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번 사건 역시 안전불감증이 낳은 인재라는 사실에 무게를 더하고 있다. 권 단장의 지적대로 해체계획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되는 등 전문성이 부족한 철거업체와 안전관리가 미진하다는 등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행정도 여론의 뭇매를 맡고 있다.

광주시 동구청에 따르면 해체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철거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해체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경찰 수사로 규명되어야 하지만, 여러 정황상 해제계획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된다”며 “자체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고 밝혔다.

사고 건물은 연면적 1,592제곱미터로 지하 1층 지상 5층의 해체허가 대상 건물이다. 연면적 500제곱미터 미만 건축물, 건물 높이 12미터가 안 되거나 3층 이하인 건물은 신고만 하면 해체공사가 가능하다.

해체작업 시공사 ‘H기업’은 지난달 14일 해체허가를 신청해 25일 해체허가를 받았다. 해체계획서에는 건축물 안전도 검사결과와 구조안전성 검토, 구체적인 해체 순서 등이 함께 기재됐다.

계획서에 따르면 콘크리트 부재를 압쇄해 파쇄하는 무진동 압쇄공법을 이용해 건축물 측벽부터 해체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건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해체를 진행하기 위해 5층 높이로 성토체나 잔재물을 쌓아 중장비가 올라가고, 잔재물 위로 이동 후 5층에서부터 외부벽→방벽→슬래브 순서로 해체한다는 내용이다. 3층까지 해체 완료 후 지상으로 장비가 이동 후 1~2층 해체작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강은미 의원은 “해체공사 전 점검사항으로 접속도로 폭, 출입구 및 보도 위치, 주변 보행자 통행과 차량 이동 상태를 확인하게 되어 있지만 전혀 지켜지지가 않았다”면서, “(계획서 상으로) 위쪽 층부터 차례대로 해체 작업을 해야 하는데 실제 작업은 중간층부터 한꺼번에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어 “철거공사의 위험성 때문에 건축물 해체계획서를 작성해 시행하도록 관련 법이 개정되었음에도 이번 참사가 발생한 이면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서류 따로, 작업 따로’의 어두운 관행이 있었다”며, “허가권과 관리 책임을 지닌 지자체의 부실한 관리 행정과 안전 의무를 철저히 외면한 원청에게 엄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광주시 건축물 붕괴사고 현장(사진=광주광역시소방안전본부)

◆ 다수의 무고한 시민 희생,
경찰은 ‘중대사건’으로 판단


경찰은 이번 사건을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이 안타깝게 희생된 중대사건으로 판단하고, 광주경찰청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71명)를 설치해 엄중하게 수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 직후 공사 관계자, 목격자 등 14명을 조사해 일부 혐의가 확인된 공사관계자 등 4명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불법행위가 확인되면 추가로 입건할 예정이다.

사건 발생 이틀째인 10일에는 경찰·국과수·소방 등 유관기관과 합동으로 1차 현장 감식을 진행하는 한편, 같은 날 시공사 현장사무소, 철거업체 서울 본사 등 5개소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관련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에 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향후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한 원인에 대한 수사를 면밀히 진행할 것”이라면서 “감식결과와 압수자료 분석 등을 통해 해체계획서에 따라 해체가 됐는지, 공사관계자들이 안전 관련 규정을 준수했는지 여부와 감리가 철거업체에 대한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는지 등을 확인해 붕괴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은 철거업체 선정과정상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도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설산업기본법상 재하도급 금지 규정 위반 여부와 함께 시공사와 조합, 그리고 철거업체 간 계약과정에서의 불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또 인허가 등 행정기관의 관리감독 적정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이용섭 광주시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은 “사고원인은 합동조사단의 조사에서 밝혀지겠지만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인재였다”면서 “특히 4월 4일 동구 계림동 주택 붕괴 사고 이후 건설현장을 철저하게 관리·감독하도록 4차례에 걸쳐 공문으로 안내했음에도 이런 사고가 발생하게 되어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사고 원인을 조사해 엄정하게 조치하고, 건설업체들의 안전불감증과 하청·감리 관련 문제가 시정되도록 정부와 국회에 제도개선을 건의하겠다”고 말했다.

◆ 비상주 감리 계약,
“감리자 처벌만이 능사인가?”


지난해 제정된 건축물관리법에 의해 건축물 해체 작업 시에는 허가권자가 해체 공사 감리자를 지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때 감리자는 ▲해체 작업순서, 해체공법 등 해체계획서에 맞게 공사하는 지 여부의 확인 ▲안전관리 대책에 맞게 공사하는 지 여부의 확인 ▲해체 후 부지정리, 인근 환경의 보수·보상 등 마무리 작업사항에 대한 이행 여부의 확인 ▲해체공사에 의해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이 적절하게 처리되는지에 대한 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사고 당일 해체 공사 현장에 감리자가 없었다는 것으로 의견이 분분하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에 따르면 감리자의 부재는 비상주 감리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대표는 10일 광주시청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감리자의) 상주여부는 계획서에 따라 제대로 공사 될 것이냐, 아니냐의 판단이 초반에 이뤄지기 때문에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다”면서, “사고가 났을 때는 감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관련해 동구청은 안전관리업무 감독 소홀에 따른 책임을 묻기 위해 감리자를 사법당국에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축물관리법 제51조(벌칙) 제2항에 따르면 해체공사감리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아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한 감리자는 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A 건축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상주 감리계약을 한 건 아닌지 모를 일이고, 2년 전 잠원동에서 발생했던 유사 사고에서도 감리자가 금고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다”며 “사고예방을 위한 제도의 확립보다 제재나 처벌만 강조하는 것은 아닌지, 또 현실적으로 감리업무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입법화하는지 돌이켜 볼 때”라는 입장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2년 전 잠원동 건물 붕괴 사고 시 감리비는 300만 원에 불과했다”며, “이것이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비용으로 적절한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