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의미
코로나 19,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의 영향으로 전보다 많은 시간 집에 머물게 된 사람들이 내부 인테리어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 전자 제품회사의 매출이 역대 최대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읽고, ‘사람들의 관심이 단순히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떠나 살기 좋은 내부공간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부공간에만 관심을 가진 줄 알았던 이들이 생활공간 전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지, 올해 들어 단독주택 의뢰 문의가 다수 들어왔다. 땅의 형태도, 거기 사는 사람들도 제각각인 몇 개의 주택을 계획하며, 사람이 사는 곳인데 매번 다른 형태의 계획안을 보면서, ‘우리에게 집이라는 게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최근 의뢰받은 단독주택이 있다. 기존 건축물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것이었는데, 현황조사차 방문한 곳에는 기존의 건축물이 북쪽을 보고 앉아있었다. 남쪽에는 대나무밭이 있고, 북쪽과 서쪽에는 인근 주택들이 면해 있었고, 동쪽에는 도로와 면하고 있는 대지였다. ‘왜 다른 방위들을 배제하고 북향으로 지었을까?’ 생각에 고개를 갸웃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주변의 주택들도 모두 북향이었다. 북향보다는 이점이 많은 동향을 버리고 북쪽으로 얼굴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른 건물들의 영향이었었나, 라는 생각과 더 나아가 ‘집은 사람들에게 있어 예전에는 어떤 의미였고, 지금에는 어떤 의미일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시대물 드라마에 등장하는 집의 모습을 보면, 비슷한 모양에 비슷한 형태로 대문 색만 조금씩 다른, 자신들의 존재감보다는 사회성과 지역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 양상을 보인다. 그곳에 생활하는 사람들도 집은 그냥 사는 곳, 일과를 마치고 들어와서 쉬는 곳, 나를 드러내기보다는 만들어진 곳에 들어가 나를 맞춰 사는 곳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집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최근에 지어지는 집들을 보면, 오롯이 건축 의뢰자의 삶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이 네 명인 주택이 있다고 할 때, 어떤 사람은 거실보다는 마스터 룸의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거실이 북쪽으로 가더라도 마스터 룸의 채광과 독립성을 중요시한다던가, 옷에 관심이 많은 딸을 위해 다른 방들을 줄이더라도 드레스 룸의 크기를 다른 방들에 비해 크게 계획해 달라고 하는 경우, 혹은 요리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다용도실의 기능을 강화해달라고 요청하는 의뢰인 등. 평면의 형태만 봐도 그들이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들을 추측해 볼 수 있는 일은 여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이라는 곳이 과거에 단순히 머물렀다 가는 곳이었다면, 현재의 집은 나를 표현하는 공간, 혹은 살아가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보는 개성 넘치는 주택들, 그 주택을 소개하는 건축주들. 단지 건축사의 의견이 아닌 의뢰인들의 의견을 표현한 작품들 속에 녹아있는 그들의 일상들을 보면, 과거의 집보다는 현재의 집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글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내가 과연 그럴 자격이 되나, 나보다 경력 많고 훌륭하신 분들이 많은데, 괜한 만용을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지만, 누군가의 삶을 그려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마치 사진사처럼 혹은 화가처럼 그들의 삶을 담고 포용할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고 있던 일상에 작은 쉼표 하나를 찍을 수 있어서 알찬 시간이었다. 이런 기회를 주신 대한건축사협회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