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로 리더를 선출하면 어떨까?
만약 조직에서 누군가가 리더를 제비뽑기로 정하자고 제안한다면 무슨 일이 생길까. 아마 대부분 조직에서 이런 제안을 한 사람은 매장당할 확률이 높다. 조직의 명운을 쥔 리더를 추첨 방식으로 뽑는다는 건 조직의 운명을 운에 맡기자는 무책임하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라고 비난받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최근 리더십 분야 최고 학술지인 ‘The Leadership Quarterly’에 뜬금없이 “제비뽑기로 리더를 선출하면 어떨까?”를 고민해본 논문이 실렸다. 최고 수준의 학술지에서 굳이 제비뽑기라는 극도로 비이성적인 것 같은 리더 선출 방법을 고민해 본 이유는 무엇일까.
제비뽑기는 수많은 단점을 열거할 수 있다. 하지만 딱 하나 장점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제비뽑기로 선출된 리더라면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서 그 자리에 올랐고, 조직 내에서 내가 가장 똑똑하다”는 식의 자만감은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구진이 주목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이다.
성과를 창출해야 하는 조직에서 제비뽑기로 리더를 뽑는 사례는 거의 없기 때문에 연구팀은 실험실 상황에서 리더를 선출하고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들은 완전 경쟁, 완전 무작위, 부분 무작위(먼저 상위 점수 받은 사람 3명을 고른 후 이들 가운데서 제비뽑기로 리더 선출) 등 3가지 상황에서 리더를 선출했다. 이후 활동을 통해 리더의 자기 과신과 이기심을 측정해봤다.
연구 결과, 부분 무작위로 선출된 리더가 권력 오남용 확률이 적었다. 부분 무작위 방식으로 선발된 리더는 자신에 대한 확신이 높더라도 자기 의견을 지나치게 강하게 주장하지 않았으며 팀원들에게 권한 위임도 더 잘 했다. 반면, 완전 경쟁 방식으로 선발된 리더는 자기 과신 성향이 가장 강했고 권력을 남용하기도 했으며 성공을 자기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성향 역시 강했다.
최근 필자가 만난 경영 전략 분야의 거장급 연구자는 “리더의 가장 큰 문제는 자기 덕분에 성과가 났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 방식으로 선출된 리더는 자신의 역량에 대한 확신이 강해지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않으려 하며, 모든 공을 자신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진다. 이는 불확실성이 높은 경영 환경에서 소통을 방해하고, 결국 중요한 정보의 전달을 차단할 확률이 높아진다. 부하 직원들은 리더가 불편하게 생각할 정보를 잘 전달하지 않게 되고, 리더는 부족한 정보로 독단적 의사결정을 내리게 되면 결국 조직은 쇠락의 길로 가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총리를 뽑을 때,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교수를 뽑을 때 부분 무작위 방식을 도입하는 등 역사적으로 부분 무작위 방식이 도입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에 제비뽑기를 도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겠지만, 적어도 리더의 오만과 과신을 견제하지 못하면 조직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