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火국토처럼, 명자꽃 피다
불火국토처럼,
명자꽃 피다
- 최재목
우리 중간중간 줄줄이 새며 살아왔지만
사잇길에 붉은 꽃 되어,
가을 드는 마을에 마주 앉았다
차마 들킬까 이 마음 숨긴 끝자락
아프도록 문지르며
이나무 먼나무…,
그런 이름들만 들먹여 봐도
아득하여라
햇살로 꽃잎 다독이며 계신,
허접하여 거룩한 하느님
하마터면 뚝뚝 다 익어서 떨어질까 봐
대봉감 홍시 딛고, 하나… 둘…
일곱 발자국 걸어, 가랑잎 흔들리듯
고요 속을 디디며 부처는 올까
가장 존귀한 것이라곤
얼굴 붉히며 타오르는 이 마음밖에,
천상천하유아독존…
아니 천상천하 You are 독종…
그래, 세상 살며 진 빚
어쩌다 중간중간 가을 햇살로 터져
짓무르는데
손 벌려도 더는 없더라,
거기 그저 명자꽃만 궁시렁궁시렁
불火국토처럼, 피어 있더러
하마터면 참 아름다웠을 꽃이여
- 최재목 시화집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 /
21세기문화원 / 2021년
명자꽃은 산당화, 애기씨나무, 장수매, 노자, 백해당, 청자, 가시덕이, 처자화, 아가씨꽃나무, 당명자나무, 모자예목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왜 이렇게 다양한 이름들이 한 꽃나무에 붙었는지는 모른다.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에는 그 색이 모자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불의 색도 아니기에 “불火국토”라는 부름으로 겨우 불의 색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일까? “하마터면 참 아름다웠을 꽃” 무어라고 부를 수 없기에 시의 상상이 “중간중간” 파고들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