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생일

2021-03-16     함성호 시인

축, 생일

- 신해욱

이목구비는 대부분의 시간을 
제멋대로 존재하다가
오늘은 나를 위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렇지만 나는 정돈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나는 내가 되어가고
나는 나를
좋아하고 싶어지지만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점점 갓 지은 밥 냄새에 미쳐간다.

내 삶은 나보다 오래 지속될 것만 같다.

 

- 신해욱 시집 ‘생물성’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이 시를 거꾸로 읽어 보자. “이목구비∼ 내 삶은∼”의 순서가 아니라 “내 삶은∼”서부터 읽으면 순방향과 역방향이 어딘가에서 만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어색한 시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가 바로 거기다. 혼돈의 상태도 그렇고, 갓 지은 밥 냄새에 자신보다 오래 지속될 자신의 삶을 생각하는 그 시간도 어색한 것이다. 어색하기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시는 돌아서서 각각 제 갈 길로 간다. 하나는 다시 혼돈으로, 하나는 밥 냄새에 미쳐가는 내 삶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