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그릇과 정치(政治)
의약품의 수퍼 판매 허용여부와 관련해 사회가 시끄럽다.
11년 전 “여론의 비난은 이미 각오했다. 정부와 언론은 악의적인 매도를 즉각 중단하라.”며 의약분업에 반대해 집단 휴진을 벌이면서 당시 의사협회장이 외친 말이다. 세월이 흘러 이젠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를 반대하는 전국의 약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칠 법하다. 과거나 현재나, 의사든 약사든 그들 나름대로의 명분은 있지만 일반 국민들에겐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 비친다.
정책의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관련 이익단체들은 얻을 수 있는 건 최대한 얻으려 하고 있다. 그게 이익단체의 생리다. 물론 명분은 공익이다. 이번 의약품의 슈퍼 판매라는 현안을 두고 정부가 내세우는 국민의 ‘편의’도 공익이고 약사들이 주장하는 의약품의 ‘안전’ 역시 공익이다. 이는 옳고 그름의 대립이 아니다. 이익과 이익의 대결이기 때문에 ‘밥그릇 싸움’이다. 나쁘다거나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다.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정치’를 규정했으며 ‘밥그릇’ 역시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이므로 밥그릇의 권위적 배분 역시 정치라고 볼 수 있다. ‘밥그릇’ 을 논한다 하여 생각의 수준이 낮고 저차원적 사고방식이라고 폄훼하면 안 된다. 이념이나 종교적 갈등 보다 밥그릇 갈등의 수습이 타협과 절충이 훨씬 용이하다.
건축계에도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건축물의 내진 성능확보와 관련, 국민의 ‘편의’와 거주의 ‘안전’이라는 두 가지의 공익이 충돌하는 형세다. 즉, 한 편에서는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 축소와 민원처리의 편의성을, 다른 한 편에서는 국민들의 거주 안전성을 우선해야 한다고 각각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역시 공익을 앞세운 밥그릇 싸움이다. 국토해양부의 정치력이 필요한 때다. 해당 정책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집단이익은 집행과정에서 다시 문제가 발생하고 걸림돌이 많아진다. 지난 의약분업 때 벌어진 의료대란을 잊으면 안 된다.
정책은 이익갈등이 일어나는 정치의 영역이다. 민주주의에선 참여자 중 어느 누구도 그 과정을 홀로 지배할 수 없다. 정부가 혼자 열심히 한다고 정책이 성공하는 것 또한 아니다. 이해 당사자들의 타협과 협상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잘못되면 결과에 대한 비용을 국민들이 치를 수밖에 없음을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