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발톱에 봉숭아 들이는 언론
지난 4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 5월 30일 공포된 개정 건축사법 제12조는 「유사명칭의 사용 금지」 조항으로 ‘건축사가 아닌 사람은 건축사 또는 이와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건축사법에 의해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의 고유 업무다. 이 조항은 건축사 아닌 사람이 본인의 인지도와 건축 관련 업무의 이해능력을 이용, 일반 국민들의 판단을 호도하여 음성적인 건축설계 및 감리의 영업행위에 대한 개연성을 근절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지금까지 건축가나 건축설계사 등의 건축사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사기’쳤던 이들에게 내리는 철퇴다. 또한 개정된 건축사법에는 건축사의 손해배상책임을 보장하기 위한 보험 또는 공제에 강제가입규정이 신설되었고 각종 설계도서에 업무의 품질보증을 위한 서명날인의 의무화를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건축설계와 감리에 대한 건축사의 책임과 의무를 강화하면서 전문가로서의 건축사 자격을 보증하는 현실을 무시한 상황이 벌어졌다.
6월 14일자 중앙일보는 이순신기념관과 관련, 설계자를 이종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소개했다. 2006년 치러진 이순신기념관 건립 설계경기의 당선자는 ‘(주)건축사사무소 메타아이엔시’로 발표되었다. 문화재청 발표자료다. 이종호 교수는 건축사가 아니다. 어떤 관계로 이순신기념관 설계에 간여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를 설계자로 지칭하고 공사 진행 중에 개입하지 못했음을 대놓고 얘기할 입장이 아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각종 도서에 서명 날인한 (주)건축사사무소 메타아이엔시 소속의 건축사는 ‘자격대여’에 대하여, 이 교수는 ‘유사명칭 사용금지’에 대한 범법행위를 자인하는 꼴이다. 이번 기사를 통해 대한민국 건축계의 상황을 통쾌하게 꼬집은 이은주 기자는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간과했다. 건축행위의 기본이 되는 설계자의 정의는 무시하고 건축문화를 논한다면 돼지발톱에 봉숭아 들이는 격 아닌가? 결국 6월 15일 이 기자가 작성한 기사내용처럼 국내 건축사의 열악한 현실을 압축한 ‘종합선물세트’에 스스로 내용물 하나를 더한 셈이다.
며칠 전 ‘현대판 화타’라는 평가를 받던 구당 김남수 대표가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됐다. 전임 대통령을 비롯해 유명 인사를 진료하면서 침뜸 전문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자격 없이 무허가 의료행위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아무리 전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실정법에 어긋나는 행위는 정의가 아니다.
이종호 교수와 이은주 기자는 전국의 건축사들에게 공개 사과하는 것이 지식인으로 올바른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