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것

2009-06-01     최정민
▲ 독일 프랑크푸르트 미군 비행장 공원화: 활주로의 가운데 부분은 남기고 가장자리는 파쇄 하여 무수한 틈을 만들어 식물이 침투하도록 하고 있다. ⓒ최정민

자연스럽다는 것은 친밀감 있는 말이다. 자연스럽다는 평가는 대체로 호의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진다. “자연스럽게 해 달라”는 말은 미용실 같은 곳에서 누구나 한번쯤 해보았음직한 주문이다. 이때 자연스러움은 까다롭고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조경가들이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주문이기도 하다. 어떤 지자체는 현대 기술이 압축된 듯 한 시청사를 신축하면서도 조경은 자연스럽게 해달라고 한다. 여기서 자연스러움이란 ‘(원생)자연에 가깝게’라는 뜻이다. 최근에는 생태적인 것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도시의 기반시설이지만 사람들이 기피하는 소위 혐오시설들을 자연스럽게 가려달라는 것도 자주 접하는 주문 가운데 하나다.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농촌마을에 새로운 단지를 설계하면서 기존마을을 자연스럽게 차폐해달라는 것은 직선 기하를 선호하는 작가주의적 건축사의 주문이다. 자연에 가해왔던 폭력적 행위에 대한 반성인지, 인공적인 것을 중화하려는 의도인지, 진정 자연을 아끼기 때문인지는 구분하기 어렵지만 자연과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사실, 길들여지지 않은 자연을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은 조경의 오랜 관심사였다. 보기 싫은 것을 자연스럽게 위장(Camouflage)하고 서로 다른 기능을 자연스럽게 완충(Buffer)하는 역할은 오랫동안 조경에 부여된 역할이었다. 이 땅에 도입된 서구적 개념의 조경이 도입된 것도 개발의 난폭성을 중화하기 위해서였다. 조경의 위장적 역할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옥상정원은 조경의 이런 역할을 풍자하고 있다. 설계자인 미국 조경가 캔 스미스는 플라스틱 재생고무, 유리 같은 인공재료를 사용하여 식물과 바위 돌 같은 자연을 드러내놓고 모방했다. 자연을 모방했다는 것을 속이려는 의도가 전혀 없다. 인공적인 것, 보기 싫은 것을 가리거나 덮어서 보는 사람을 속이려는 기만적 행위의 공범 같은 역할에 대한 우회적 비판인 셈이다. 이보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거나 보기 싫은 것을 숨기는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제시한 이들은 아발로스와 헤레로스라는 스페인의 건축가들이다. 이들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북동해안의 매립지를 공원화하면서 재활용 시설과 쓰레기 소각장을 공원시설로 포용하고, 이 시설들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노출시켰다. 이를 보는 사람들 스스로가 배출하는 쓰레기가 도시와 환경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될 것이고, 더 민감해질 것이라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이다.

감추고 감싸서 아름답고 안전하게 보이게 만드는 것이 조경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독일의 조경설계사무소인 GTL은 프랑크푸르트 북쪽 미군 비행장 공원화하면서 거의 모든 군사시설과 활주로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남겼다. 일부 활주로와 주기장 같은 견고한 포장 면은 파쇄 해 놓았다. 파쇄되어 생긴 틈에는 자연 천이 과정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들어와 자라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자연의 힘에 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견고한 포장 면이 자연의 힘을 받아들이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오래되고 보기 싫은 것을 걷어 내거나 덮어 버리기 보다는 드러내고 자연과 대비시켜 자연의 힘을 체험하게 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환경과 자연의 중요성을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조경은 무조건 자연을 닮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좀 더 솔직하게 말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직선보다 곡선이 자연스럽고, 구불구불 분절되고 들쭉날쭉 휘날리는 형태가 보다 생태적이라고 믿는 클라이언트나 설계자들이 형식적 자연주의에 매몰되어 자연과 그들 스스로를 기만해왔던 것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와 자연을 닮고자하는 것, 주변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시와 환경문제 같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자각하게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단지는 기존마을을 차폐하고,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을 지우고, 도시는 자연을 배척하는 대립적 관계는 스스로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도시, 사회, 환경 문제의 개선이나 완화에 기여 하지 못했다. 도시와 자연, 생태와 문화,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 기존마을과 새로운 단지가 서로를 인정하면서 호혜적으로 공존하게 하는 것이 오늘의 설계가들이 고민해야 할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자연스럽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와 자연을 닮고자하는 것, 주변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도시와 환경문제 같은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자각하게 것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