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건축이 독립된 분야로 인정받는 원년 되길
2021년은 우리나라 건축이 온전히 건축 본연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원년이 되기를 꿈꿔본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년 ‘건설안전특별법’상 설계자·감리자에 대한 책임과 벌칙 관련 논란을 상기해보면, 건축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미 각종 법과 제도들에서 이런 잘못된 인식이 반영돼 나타나는 중이다.
건축사들의 본연의 업무는 건축물을 설계하는 창조적 작업에 근원을 둔다. 우리들이 생각하고 상상하고 고민한 것을 설계라는 과정을 통해 도면화한다. 그리고 건축사들이 방향을 제시한 구체적인 설계 도면을 기준으로 시공되는 과정을 관찰·관리하는 것이 감리자의 역할이다. 감리자 역시 시공의 주체가 될 수 없다. 건축 설계와 시공은 역할부터 완전히 구분되며, 건축과정에서 독립돼 있다.
시공과정의 문제점들, 예를 들면 작업자의 실수와 이로 인한 사고는 설계자와 감리자가 감독하고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단어가 유사하여 또는 건축 프로세스 내에 건축 각 주체가 같이 있어 헷갈리기 쉬우나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분야, 다른 영역이다.
결론적으로 건축에 대한 인식, 제도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니, 설계자와 감리자에 대한 책임부과가 이중 삼중으로 가해지도록 ‘건설안전특별법’이 성안됐다. 설계자(건축사)가 창조하고 그려낸 도면은 건물을 만들기 위한 아주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경제적 손실과 소송문제로 건축사들의 설계도면에 대해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도면의 내용을 시공하는 과정에 대한 책임은 철저히 시공자의 몫이다. 시공자의 경험과 노하우, 즉 시공의 부가가치는 시공 방식을 경제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창출된다. 시공현장에서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현장 근로자를 진두지휘하는 역할은 100% 시공자 몫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건축사는 설계 도면을 시공자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모든 역할이 마무리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행정부와 입법부는 건축사에게 현장 안전에 대한 책임까지 요구하고 있다. 건축이 건설·토목과 태생이 다르고, DNA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은 건축설계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당장 건축사나 건축사보에 대한 노임 단가기준부터 왜곡돼 있다. 노임단가 산정 방식 또한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다. 기존 시장을 조사해서 통계화하는 방식은 21세기 건축설계 산업과는 맞지 않다. 건축설계가 고도로 지식 산업화되고, 창의적 독창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지식기반의 임금체계 연구를 바탕으로 건축사나 건축사보의 노임이 산정되어야 한다. 교육과정과 실무 수련 과정, 그리고 건축사들의 창조적 성과물의 경제적 보상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임금 체계로 재편돼야 한다.
생각해보자. 부가가치와 잉여가치가 인정받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건축사의 상상력에 따라 결과로 만들어지는 건물은 엄청난 가치로 매매된다. 때에 따라서는 가격 프리미엄이 발생한다. 이른바 브랜드 가치까지 창출된다. 이런 무형의 자산 가치는 현재 건축 설계 산업 주체들인 건축사나 건축사보의 노임대가에 전혀 반영되고 있지 않다.
2021년을 시작하며 바라는 바는 대한민국에서 건축이 독립된 산업 분야로 인정받으면서, 건축사나 건축사보들의 생존이 보호받는 원년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한 건축사, 건축사보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요구하고 발언해야 한다. 스스로 보호하고, 권익을 요구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