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2021-01-05     함성호 시인

시장에서

- 황인숙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들러보았죠.
  수줍은 제비꽃에 벗은 완두콩.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
  그럼그럼 딸길 살까 바나날 살까?
  아니면 익살맞은 쥐덫을 살까?
  그를 위해 무얼 살까 둘러보았죠.
  한 쾌의 말린 뱀, 목에 늘인 할아범.
  아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뽀골뽀골 미꾸라지 시든 오렌지
  아니면 특제 실크덤핑넥타이.
  아아아 재밌어 이걸 사줄까?

  복작복작 밀리며 걷는 내 손엔
  한 쪽엔 아이스크림 한 쪽엔 풍선.
  농담처럼 절뚝절뚝 뛰는 지게꾼.
  그 뒤를 바싹 쫓아 빠져나왔죠.
  주머니에 뭐가 있나 맞춰보아요.
  바로바로 올림픽 복권이어요.
  만약에 첫째로 뽑힌다면은
  아아아아 재밌어 너무 재밌어
  풍선처럼 그이는 푸우 웃겠죠.

 

 - 황인숙 시집
  ‘새는 하늘을 자유롭게 플어놓고’
  문학과지성사 / 1988년

천진하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사는 게 이렇게 재밌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기가 좋아하는 걸 남을 위해 사주는 사람은 재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이 좋아하는 걸 사줘야 하는 사람은 숙고에 숙고, 거듭 생각하고 망설이게 된다. 시에서 나열되는 품목에는 전혀 쓸데없는 것들도 있다. 쥐덫, 완두콩은 무엇에 쓸까? “그에게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것”들이 사실은 이 장보기의 재미다. 어쩌면 이 선물을 보고 그가 터뜨리는 웃음이야말로 화자가 받고 싶은 큰 선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