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건축은 느림의 건축이다
슬로우 엑서사이즈(Slow Exercise)인 명상, 단학, 기공, 요가의 목적 및 수련 방식은 지역과 창안자에 따라 다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마인드 테라피(Mind Therapy)로 많이 알려졌으며 종종 요가나 필라테스와 연결된다. 반면 우리나라와 중국, 인도에서는 대체로 인체의 기(氣)를 자연과 일치시켜 심신의 건강을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로 집중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서양식 명상법이 활용되기도 한다. 서양의 명상법이나 동양의 명상법은 방법은 약간 달라도 결국 느림의 미학처럼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이 중점이다.
명리학에서 팔자를 바꾸는 법이라 하여, 흔히 적덕(선), 스승, 독서, 명상, 명리, 명당을 꼽는다. 이 중에서 우리들은 명상에 주목하고 특별함을 느낀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명상도 서양에서 말하는 명상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슬로우 엑서사이즈를 광의(廣義)의 명상으로 보았지 않나 싶다.
마음과 몸의 건강뿐 아니라 건축에도 느림의 건축이 있다. 바로 전통건축이다. 유럽 선진국에선 2∼3대에 걸쳐 짓는 집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건축사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스페인 바로셀로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1883년 시작한 건물로 고딕건축의 상징이다. 에스파냐 출신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으로, 아직도 건축 중이다. 3∼4년 후면 준공을 한다고 하지만 대단하다. 건축물 하나가 국가 브랜드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다. 필자의 지인도 소규모 건축물 건축 허가를 낸 뒤 자가 시공으로 약 3년 전에 토목작업부터 시작했다. 시간이 나면 기초하고 시간이 나면 벽 만들고 또 다른 시공을 해 가면서 짓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3년이 더 걸릴지 모른다.
전통한옥도 슬로우 건축에 속한다고 보았다. 집터를 선정할 때에도 신중을 기하고 평면구성은 물론 대문 위치까지 대충대충 하는 흔적이 없다. 특히 대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대문은 기의 출입구라 해서 선정할 때 더욱더 신중했다. 대문으로 사람이 드나들지만, 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귀신도 대문으로만 드나든다고 했다. 3대가 적선을 해야 정남향에 남동쪽 대문을 만난다는 것이다. 또 향(向)은 어떤가? 주역 8괘의 이론에 따라 정했다. 집터는 들녘을 피해 산기슭 아늑한 7부나 8부 능선에 앉힌다. 뒷산이 날카로우면 인격 함양에서 심성이 메마르며 단기에 치우친다는 설과, 뒤쪽 산형이 둥글고 너그러우면 마을 사람들은 덕기(德氣)가 넘친다는 것도 감안했다.
지형상 산사태가 날 우려가 있는 자리엔 집터를 잡으면 안 된다. 그러니 집터 잡는 일이 중요하다. 집은 가능하면 남향으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나, 전통한옥에서는 남향보다도 지형을 더 따랐다. 지세에 역행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산은 고정되어 있지만 물은 항상 흘러야 하고, 산이 높으면 물도 흘렀다. 그러므로 산은 음이고 물은 양이다. 따라서 음과 양이 만나면 생산이 이루어지는데, 그게 식물과 동물인 생물이다. 좋은 집터를 흔히 명당이라 부른다. 명당에는 명당수가 있어 집안 우물의 물맛이 좋으면 약수로 통했다. 또 집 지을 때 쓰는 재목은 어떤가?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녀 수분이 충분히 빠진 육송 목재를 사다가 집을 지었다. 도편수의 손길이 하나하나 모여 잘 다듬어진 집이 준공됐던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친 집은 백 년, 이백 년 간다. 콘크리트 집은 피복두께에 따라 건물 수명이 다르지만, 길어야 60∼100년이다. 콘크리트 집에 비하면 한옥은 상상을 초월한다.
1969년 12월 26일 빨리빨리의 대명사 격인 마포 와우아파트가 준공됐다. 16동 규모로 들어선 서민 아파트였다. 착공일이 같은 해 6월 26일이었으니 6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지은 셈인데, 어이없게도 무너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성수대교 스팬 붕괴 사건이나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도 비슷한 사건으로 보인다. 관련 법이 많이 정비됐다고는 하지만 국민들의 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이 문제다. 이런 사건들은 국민에게 안전에 대한 경종을 크게 울렸다.
지금 우리들이 설계하고 건축하는 데 있어, 건축사들이 건축주나 시공자에게 휘둘리며 조급한 심정으로 빨리빨리 문화에 길들여진 느낌이다. 내가 살 집, 아니 누가 살더라도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전반적인 것을 건축사에게 맡기면, 건축물을 튼실하게 지을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지도·감독·감리를 해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건축문화를 물려줘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