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안전특별법, "처벌 기능에 치중‧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법률"
대한건축학회, ‘건설안전특별법안에 대한 개선방안 토론회’ 개최 영업이익률의 약 4~7%에 해당하는 과징금, 산업불신의 시각 보여주는 예
건설공사 주체별로 권한에 상응하는 안전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것을 전제한 건설안전특별법이 건설공사 각 주체들로부터 된서리를 맞고 있다. 해당 법률은 전체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중에서 건설업 사고사망자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를 줄이고, 이천 화재사고와 같은 후진국형 인재를 끊어내겠다고 제안된 법률안이다.
건설안전특별법이 건설사고 간 처벌을 위한 기능에 치중하고 있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함에도 사회적 이슈에 편승한 특별법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기존 건축법령에서 건축안전과 관련한 내용을 충분히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됐다.
12일 대한건축학회가 주최한 ‘건설안전특별법안에 대한 개선방안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이 한목소리로 건설안전특별법안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안전 관련 건축 법령 분석을 통한 건설안전특별법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유준호 대한건축사협회 법제전문위원은 건설안전특별법이 안전 관련 기존 법령인 ▲건축법 ▲산업안전보건법 ▲건설기술진흥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필요 시 기존 건축 법령 개정으로 충분히 개선 가능하다고 밝혔다.
일례로 건축법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른 위해 방지 계획을 마련하고, 건설기술진흥법은 안전관리계획 수립대상이 오는 12월에 소규모로 대폭 확대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역시 근로자에게 안전 관련 정보제공과 안전조치, 발주자의 안전조치에 대한 사항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준호 전문위원은 건설안전특별법 개선방안으로 “가설구조물 및 안전시설물의 설계는 기존 법령과 기준에 따라 시공자의 업무”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은 자재 및 기술사용에 따라 상이해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우므로 예정 공사기간과 예정 공사비용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특별법 제정안에는 ‘공사기간과 공사비용을 산정하고, 건설사고 예방에 필요한 가설구조물과 안전시설물 등을 설계도서에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시공자의 안전관리 의무를 규정한 안 제12조와 관련해서도 “건설 노하우와 공사방법에 따라 공사기간과 비용이 상이하므로 시공자가 산정해야 한다”는 개선안을 제시했다. 벌칙 규정과 관련해서는 “벌칙 규정은 다소 과도해 면밀한 검토를 통해 조정되어야 하며, 특히 해당 법안의 안전관리 의무 중 설계자는 자료제공만을 규정해 처벌 규정 조정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감리자의 안전관리 실효성 확보방안’을 발제한 백남규 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전무는 “사회적 합의가 중요함에도 이슈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특별법안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특히 그는 안전관리업무 겸직과 관련한 실태조사를 토대로 주제발표에 나서 설득력을 높였다.
감리회사 23개사, 현장 90곳, 감리자 31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감리자의 전문성 부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 관련 자격증 보유현황은 전체 319명 중 14%인 46명만이 보유하고 있고, 안전관련 지식 이해도 역시 ‘매우 잘 알고 있다’가 3.8%에 불과하다고 소개했다.
안전관리 업무의 겸직의 비효율성에 대한 설문조사도 공개됐다. 결과에 따르면 안전 관련 지식 및 경험부족으로 직접 수행이 어렵고, 공사감리 업무량이 과중해 적극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안전관리 업무 수행에 따른 책임 증가와 부담 증가 등이 공사와 안전관리 업무 겸직에 대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그는 과로사까지 발생한 택배 분류거부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라고 밝혔다.
백남규 전무는 감리자의 안전관리 실효성 확보 방안으로 ▲전문 안전 감리 배치 ▲안전감리 분리발주 ▲감리의 성능설계 확인제를 제시했다. 백 전무는 “건설안전특별법은 시공감리자에게 안전관리 업무를 추가해 행위자의 능력을 감소시키고, 안전시설물을 설계자가 작성, 감리 확인해 실현가능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타당성과 실효성이 법의 효력을 좌우한다면 입법부와 사법부가 타당성을 법과 현장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것이 전문가의 몫”이라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조훈희 고려대학교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는 ‘안전한 건축물 지속가능한 건축산업’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건설안전특별법의 배경이 된 건축물 생애주기에서 안전사고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그는 산업안전 모범국의 영국의 사례에 대해 설명하며, 현재 국내 건설안전특별법은 ‘갈등과 벌칙이 강조되는 특별법의 한계’라고 진단했다.
조훈희 교수는 “벌칙 조항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을 보면 건축 및 건설산업을 보는 정부의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최근 4년간 영업이익률의 약 4~7%에 해당하는 과징금은 입법 자체가 징계를 전제하고 산업을 불신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안타까운 일이다”고 밝혔다.
토론에 나선 양동춘 아이티엠코퍼레이션건축사사무소 부사장은 “규제와 처벌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설계와 시공, 감리 등 단계별 안전이 확보되는 법안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고, 정광량 동양구조안전기술 대표는 “근본을 고치지 않고 사고 난 부분만 고치려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면서 “설계비는 그대로인 채 후속비용만 늘어나는 구조를 바꿔 설계를 충실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성훈 대림산업 주택사업본부 안전팀장은 안전관리비를 비용 절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다만 과징금 부과는 기업의 생존에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매우 높은 수위의 처벌로 사회 전반에 문제로 발전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