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법과 건축문화

2020-11-02     이관직 건축사·(주)비에스디자인 건축사사무소
이관직 건축사

법은 사람 간의, 집단 간의 문제, 공권력과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계약이다. 계약은 평등하게 맺어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법은 공평해야 한다는 이념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현실에서 공평하다는 것은 그야말로 이념에 불과하다. 법은 이해관계자를 위해서 만들어지지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관계자의 이해가 반영되기가 오히려 어렵다. 이해관계자는 입법의 과정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러다가 피치 못해서 법안은 다수결로 결정된다. 민주주의, 삼권분립, 다수결 원칙……. 초등학교에서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들이지만 실제 여러 가지 현안이 얽혀 있는 현실에서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40년 가까이 건축설계 실무를 하면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건축법의 생성과 개정, 적용과 해석을 보아왔다. 나에게는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다스리면서 보아야 하는 것이 건축법이다.
 

건축법 총칙에서 건축을 정의하는 문장이 이렇게 건설 행정적일 수 있을까, 하는 난감함은 접어둔지 오래다. 건축의 정의에서부터 문화적인 관심과 그에 상응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건축법은 헌법에서 위임받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일반법이다. 우리의 헌법은 제9조에서 드러나듯이 문화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건축법과 관계된 헌법의 4개 조항에는 문화라는 단어가 나오지는 않는다. 헌법 제23조 재산권과 그 제한, 제34조 인간다운 생활 권리, 제35조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 제122조 국토이용 및 개발과 보전의 네 개 조항을 건축법의 근거 조항으로 꼽는다. ‘인간다운’, ‘복지’, ‘쾌적한’, ‘공공복리’와 같은 주요 단어들을 확대해석하면 문화라는 개념과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제대로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것이 건축법을 규제적인 건설의 측면에 머무르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1962년 건축법과 도시계획법이 제정되었다. 해방 후 미 군정을 거치고 정부 수립 후에도 1945년에서 1961년까지, 어처구니없게도 16년 동안 일제강점기의 조선시가지계획령을 건축법으로 사용해왔다. 사회가 확장되고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욕구와 이해가 분화되고 첨예화되면서 폐기와 개정을 거치면서 건축법과 관계법들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다. 앞으로 국민의 안전, 복지와 더불어 정말로 중요한 문화라는 중요한 삶의 가치를 담는 법이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라는 핵심 가치를 빼어버리면 건축설계는 완성된 구조물을 위한 건설 과정의 초기 엔지니어링에 지나지 않는다. 많은 건축사들이 건축과 토목, 건축과 도시가 나누어진 것처럼 착각하는 동안 국토 개발이라는 거대 규모의 공공영역과 주거가 건설산업의 독무대가 되었다. 건설산업기본법과 건설기술진흥법이 거대한 건설 영역의 보호와 확장을 주도하고 있다. 건축사들이 설계도 하지 못한 연면적 200제곱미터 이하의 소규모 건축물과 다가구, 다세대의 감리비를 탐내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건설산업기본법과 건설기술진흥법 속에 ‘건설산업관리’라는 개념을 만들고 기획, 타당성조사, 분석, 설계, 조달, 계약, 감리, 평가, 사후관리를 포함시켜 건설기술용역업자가 거대한 공공 영역의 설계와 감리를 다 하도록 해 놓았다. 이 부문에는 토목공사는 물론이고 설계와 시공관리의 난이도가 높은 건설공사, 200억 원 이상의 건설공사와 16층 이상, 30,000제곱미터 이상의 건설공사가 포함된다. 건축사사무소는 이러한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에 참여조차 할 수 없다.
 

설계와 감리의 업역에 있어 안전, 복지, 문화의 세 가지 이념적인 측면과 같이 보아야 한다. 건축이 문화라는 생각을 잃어버리는 순간 건축은 건설사업의 초기단계 엔지니어링에 지나지 않게 된다. 건축사가 건축법을 이해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법의 개념과 개정의 방향을 문화적 토대로 보지 않으면 그 업역이 더욱더 초라하게 오그라들 것이다.
 

백범 김구선생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일부를 인용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文化)의 힘이다. 문화(文化)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