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악마의 선택
지진은 아무 곳에서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지진발생 이력이 있는 특정지역에 밀집하여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한반도의 경우 지진활동이 낮아 그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기간의 지진관측 자료가 필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100여 년에 불과한 계기지진 자료만으로는 한반도의 지진활동을 충분히 파악할 수 없다. 그래서 계기지진 및 역사지진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역사지진의 경우 진앙 및 규모에 있어서 계기지진보다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역사지진의 진도는 평가자에 따라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감안하여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
건축물이 이런 지진에 견뎌낼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내진설계다.
건축물의 내진설계 철학은 자동차의 경우와 유사하다. 자동차는 인명을 안전하게 수송하는 데 그 주요 목적이 있다. 그러나 가끔 있는 대형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를 줄이기 위하여 일반차량을 튼튼한 장갑차처럼 만들지는 않는다. 건축물의 내진설계도 몇 백 년에 한 번 발생할 정도의 강진에 대해서까지 완전한 설계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비용과 효율성 때문이다.
지난달부터 미국 중부 일대에 내린 폭우로 불어난 미시시피 강의 강물이 최고 수위를 기록하며 남하하고 있다. 미 기상청은 엄청난 양의 강물이 계속 남쪽으로 밀려와 다음 주 초 루이지애나 주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미 언론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강 하류에 있는 인구 200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배턴루지와 뉴올리언스)가 침수될 것이 확실하다고 13일 보도했다. 지난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큰 피해를 입었던 뉴올리언스가 다시 침수될 위기에 처하자, 홍수가 루이지애나의 대도시를 덮치기 전에 물길을 틀어 차라리 인구가 적은 농촌 지역을 대신 침수시키자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대도시와 중소도시 중 어느 지역을 침수시킬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악마의 선택'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확률론적 분석에 의해 약 4,000년에 1회 발생할 가능성,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역사 상 최대 규모지진, 지진 피해에 대한 두려움과 안전을 보장해 주길 기대하는 국민들, 공공시설물 내진보강 조기추진 및 대상 확대 등 개선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재원 또한 막대하니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없는 이 상황 또한 '악마의 선택'이 필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