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선의 건축생각] ‘건설안전특별법’ 오히려 기회일 수 있다

2020-10-19     함인선 논설위원 ·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특임교수, 광주광역시 총괄건축가
함인선 논설위원

최근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 때문에 건축계가 한바탕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이 법안에 따르면 설계자는 시공자가 안전한 작업환경을 갖출 수 있도록 공사비, 공사기간을 산정하는 것은 물론 가설구조물과 안전시설물 등을 설계도서에 반영하도록 되어있다. 건설 안전과 관계되는 여러 당사자들이 각 분야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취지는 옳다. 그러나 안전과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설계자에게도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강박에 의해 항목을 찾다 보니 엉뚱한 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아직 계류 중이니 결과는 지켜보아야 할 일이지만 모처럼 건축계가 단합하여 성명서를 채택하고 반대 입장을 국회에 전달한 것은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필자는 국토부 장관의 요청에 의해 본 건설안전특별법이 논의되기 시작한 ‘건설안전 혁신위원회’ 출범 이후 전체 과정에 참여한 바 있다. 이에 이 법안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과 중간의 굴절 과정, 그리고 건축계의 앞으로의 대응 방안에 대해 이 지면을 빌려 얘기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를 통해 5년간 자살 30%, 교통사고와 산재 사망을 각각 50% 줄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 사이 자살은 오히려 늘었고 교통사고 특히 음주 사망은 윤창호 법 덕분인지 상당히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산재 사망은 7.6% 감소했으나 이중 절반을 차지하는 건설에서는 2.6% 감소에 그치고 있다. 이조차 7차례에 걸친 대책 덕인데 그럼에도 여전히 건설 산재사망률은 선진국의 5∼10배 수준이며 타 산업에 비해 3배 이상 높다. ‘건설안전특별법’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사고는 비용에 반비례하는 동시에 소득수준과도 반비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산재 사망자와 GDP를 곱해 얻는 ‘소득 반영 산재사망률’이 OECD 국가 중 불명예스럽게도 압도적 1위다. 2위 캐나다의 3배이고 13위 영국의 무려 26.3배다. 영국은 건설 관련 기소율을 높이고 ‘기업살인법’까지 도입했다. 우리도 현장소장 구속, 공공사업 입찰제한 등의 징벌로 공공공사와 대형업체 현장은 분명 나아지고 있다. 문제는 중소형 민간공사 현장이다.
2018년 건설사고 사망자는 485명, 이중 공사비 120억 이하 현장 사고가 74.3%, 20억 이하가 53.8%다. 기껏해야 2∼4층인 연면적 1000㎡ 남짓 중소형 건축물 현장에서 전체의 반 이상이 죽는다는 얘기다. 이곳은 건축주 직영공사나 건설업 면허대여 등으로 진행되는 익명의 공간, 치외법권 지대다. 연 200건 이상 대여해 10억 원 번 사람이 벌금 2000만 원 내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혁신위 회의를 통해 필자는 건설 산재사망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중소형 민간건축 현장의 책임과 처벌 대상의 실명화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건축주 직영제 폐지, 안전 감리공영제, 소규모 건설업 면허 신설, 건축사 공사 위탁관리제, 지역건축안전센터 설치 의무화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며 당초 초안에는 반영되었다. 그러나 부서 간 협의 과정에서 이들 대부분은 사라지고 뜬금없이 설계자, 감리자 의무 강화만 남게 된 것이다. ‘혹시나’했지만 ‘역시나’였다.

세계 최상위권인 우리나라의 산재가 그렇듯 중소건축현장이 킬링필드가 된 것도 급격히 경제개발에 따라온 업보다. 고강도 노동, 낮은 안전비용이 성장의 거름이었듯 저임금과 저렴주택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비공식 부문의 건설 또한 지난 50년 우리 경제가 의존한 핵심 인프라였다. 이제 와 아무리 건설안전이 중요한들 이 근본적인 생태계 질서를 엎을 만큼은 아니라는 뜻이다. 집값 상승의 우려였든 뭐든 정작 주범인 집장사, 면허대여자는 못 잡으니 그나마 실명인 애꿎은 건축사가 제사상에 오르게 된 상황이 이번 사태의 전후곡절이다.

건축사들은 이번에도 건축은 부동산, 주택 혹은 건설보다 한참 하위의 개념임을 통렬하게 느꼈을 것이다. 또한 건설안전이라는 사회적 어젠다 앞에서 설계자의 권익 옹호가 자못 용렬하게 비칠 수 있음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향후 이 사안과 관련된 입법 과정 등에서 단순히 건설안전은 우리 업무가 아니라는 것 이상의 더 명분이 있고 정교한 논리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더 나아가 중소건축의 건설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도 있다. 건축주 직영공사와 면허대여를 통한 공사를 대체할 소형건설업 면허제와 건축사 위탁 공사관리제에 대한 실현성 높은 제안이 그것이다. 더불어 중요한 것은 비공식 부문 건설 고리의 일부분이 되어있는 일부 건축사들에 대한 자체 정화 노력이다. 자기 혁신과 대안 제시 이것이 건축사들이 다시금 국민들의 신뢰를 얻고 본래의 위상을 회복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