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보아야 할지 돌아보고 싶으면
현재와 다른 과거의 집은 급격한 도시화 때문인지 골목길마다 한 집에 아홉 가구가 포도 줄기에 알알이 맺힌 송이처럼 얽혀서 살아가는 형상으로 증축돼 있었다. 목조 뼈대를 세우고 흙벽으로 마감해 블록으로 확장하거나 칸칸이 증축했다. 마당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수도·화장실이 있었다. 식구별로 직업과 나이가 다양했고, 서로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소리가 들리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다툼 없이 오히려 한 우물을 사용하면서 충돌 없이 지나온 것을 보면 서로의 아픔과 다름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구성원 간 유대관계는 아이들을 통해 더 튼튼히 쌓여진 것 같다. 흩어져 있는 돌이 아닌 쌓여진 돌탑처럼 말이다.
그 시절 경제적 환경은 작금에 비해 생존을 위한 경쟁이 처절함이 더하면 더했지 지금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비관해 목숨을 스스로 거두는 모습을 어릴 적 가까이에서 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나 자신과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수차례 의문하고 반문을 한 끝에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라는 삶에 대한 정의를 찾았다. 건축학도로서는 ‘건축은 왜 하는 걸까? 없어질 것을 알면서 왜 꾸밈에 의미를 부여하는 걸까? 누구의 필요성인가? 의도인가?’하는 질문들을 하면서 디자인 과정에서 미의 가치보다는 본질적인 목적을 더 중요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사회 초년 시절 건축주가 거주할 단독주택 설계에 참여했을 때, 건축주와의 소통을 통해 외부와 내부 면면마다 거주자의 행위를 고려하는 동시에 자그마한 건축물이지만 전체의 맥락을 살펴 디자인한 기억이 난다. 일반 건축물보다 주거 건축물의 계획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다가구, 아파트 등 공동주거 유형의 수요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라 이런 매력적인 일을 접할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다.
공동주거 건축물은 선공급, 일조·채광·높이 등에 대한 법령·자치단체의 추가적인 규제에 획일적인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세월이 지나 생활 패턴이 변화함에도 공간을 용이하게 조정할 수 없고 거주자 삶의 취향과 다양함을 담아내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 또한, 다양한 시설을 함께하고 나눌 수 있는 소단위 주민공동체와 운용 프로그램 및 경제적 지원정책 부재로 인해 이웃한 사람은 ‘누구 네’가 아닌 그저 옆집에 거주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때깔 좋은 건축물과 브랜드만 보인다. 이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거주지로 이동하거나 재건축을 통하여 조성된 주거지로 이동하고자 하는 욕구가 커지는 현상의 원인인가?
주택공급 부족과 유동성 증대로 주택이 상품화돼 다주택 소유자가 늘었다. 임대형식으로 거주할 수 있는 주택의 공급 부족은 공동주택에 안정적으로 거주하고자 하는 수요자를 불안하게 만들어 소유 욕구를 더 키웠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격 버블을 촉발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공동체의식보다는 개인 사생활을 중요시하는 현상으로, 도시화된 곳일수록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년 들어 임대주택을 거쳐 짜고 비틀어 모은 돈으로 안정된 내 집을 마련한 뒤 안정기에 드나 싶은 장년에,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삶의 무게감이 커져서인지, 답답함이 점점 가슴을 짓누른다. 어느 가수의 가사 한 절이 이처럼 공감이 클 수 없다.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예전에는 일에만 몰두하고 성실히 살면 나아질 것이란 희망이 있었고 ‘함께’라는 의식이 있었지만, 지금은 두려워진다.
권력자들의 파렴치한 이중적인 잣대와 윤리적 상식이 일반화되지 않는 사회다. 급변화된 경제정책으로 이제까지 느끼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며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라는 질병의 대유행으로 사회적 유대가 약화되어 미래를 견지할 수 없는 암흑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이 암흑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감정을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치부하고 어느 명예교수처럼 이 땅을 떠나 나만의 자유를 만끽 할 것인가? 고민스럽다!
인생4막에 접어들어 내로남불이 만연된 혼란스런 사회에 정상사회 회복을 위해 삶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어디를 봐야 할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소공동체 커뮤니티를 만들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