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퍼즐맞추기식 시험으론 국민 안전 책임질,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축사 배출 못해”

학원에서 스킬만을 익혀 보는 시험으로 전락 참석자들 ‘시험개선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 객관화, 정량화에 치우쳐 과거에 비해 시험수준도 낮아져 ‘시험에 합격한 건축사가 실무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들 정도 실무능력 바탕된 ‘문제해결 능력’ 검증방식 보완돼야

2020-10-07     장영호 기자
김항년 건축사교육원장(왼쪽부터), 서민원 건축사, 김재록 건축사협회 부회장, 김지한 건축사교육원 운영위원이 ‘건축사 자격시험 출제경향 및 평가, 개선방향'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지난 9월 29일 건축사회관 8층 회의실에서 열린 ‘건축사 자격시험 출제경향 및 평가 관련 좌담회’에 참석한 패널들은 이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정부(국토교통부)와 대한건축사협회가 시험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대한건축사협회는 지난 9월 26일 시행된 ‘2020년도 제2회 건축사자격시험’이 끝난 후 시험 출제경향 및 평가, 그리고 시험 개선방향에 대해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열었다. 이날 좌담회에는 협회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김재록 대한건축사협회 부회장, 김항년 건축사교육원장, 김지한 건축사교육원 운영위원, 서민원 건축사가 참석했다.

김항년 건축사교육원장은 “설계라 함은 건축사가 자기 책임하에 관계전문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서를 작성하고 그 설계도서에서 의도한 바를 설명하며 지도·자문하는 행위를 말한다, 라고 국토부는 그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규정한 국토부가 과연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축사를 선발하는 시험을 시행하고 있는가를 따져볼 때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건축의 공공성을 책임질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을 검증 할 수 있는 시험은 아닌 것 같다. 그러한 시험을 통해 건축사를 과도하게 배출하고, 문제만 생기면 모든 것을 설계 또는 감리자인 건축사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이번 시험문제를 살펴보니 여러 조건을 나열하고 조건대로만 하면 정답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민원을 줄이려는 관료적 생각이 반영된 나머지 평가를 객관화하려는 생각에 시험도 지나치게 정량화·객관화된 것 같다. 일례로 배치계획에서 법령상 20미터 이상 도로변 건축물은 일조권을 적용받지 않는데, 시험은 그걸 알려주고 답안을 작성할 것을 요구하는 식이다. 답을 알려준 게 너무 많다. 결국 단순히 퍼즐을 풀 수 있는 스킬만을 학원에서 배워 시험을 보는 셈이다. 그간 실무수련을 통해 쌓은, 관계전문기술자를 컨트롤 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시험이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또 “시험 채점에서도 과락 없이 한 과제를 다 틀려도 다른 과제에서 만회하여 전체 60점만 받으면 과목을 합격하는데, 건축안전을 다루는 전문가가 배치계획, 대지분석, 주차를 전혀 모른다거나 큰 실수를 한다 할지라도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고 했다.

건축사법 시행령 제11조(합격기준 등)는 “과목당 100점을 만점으로 하여 각 과목 60점 이상 득점한 사람을 합격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일부 과목만 60점 이상 득점한 경우에는 5년 내 응시하는 5회의 시험에서 해당 과목이 면제된다.

참석자들은 현 시험이 정량화, 객관화되었는지는 몰라도 ▲창의성 및 문제해결 능력을 검증하지 않고 있다는 점 ▲시험수준을 너무 떨어뜨려 건축 전반을 총괄하고, 공공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수준인 바 “이것부터 방향설정을 하고 개선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민원 건축사는 “지금 시험이 퍼즐게임이라는 점에 공감한다”며 “이는 문제의 객관화, 정량적 평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과거에는 객관식과 주관식으로 출제되어 창의력도 발휘할 수 있고, 한 가지 주제를 갖고 평면, 단면 등을 그렸었다. 현 시험은 응시자가 건축사로서의 실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질이 부족하더라도 학원에서 시험을 위한 스킬만 단시간 습득하면 합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시험개선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현 시험이 1교시의 제2과제가 대지분석인데, 실제 가능성은 적지만 대지분석을 0점을 받아도 배치계획을 60점 이상 받으면 합격하게 된다. 이전에 과락이 있었던 때와 비교하면, 시험이 점점 쉬워지는 경향은 분명한 것 같다. 따라서 건축사가 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 기준이 좀 더 명확해야 되며, 건축사 자격선발 시스템도 공공의 업무인 설계, 감리를 하고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건축사를 선발하기 위한 보다 개선된 방안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지한 건축사교육원 운영위원도 “전문자격 수준에 맞는 시험에 의해 건축사가 배출돼야 건축물 안전이 보장된다는 건 불문가지다. 시험을 봐서 자격을 받은 건축사가 과연 실무를 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든다면 심각한 문제다. 2000년 초반은 건축사가 되기 위해 상당한 수련을 요구했다. 당시 1차 예비시험으로 자격을 검증하고, 2차 A3 작도시험을 통해 합격자가 선발되는 등 시험 난이도와 심도가 깊었다”며 “시간이 흐르며 1차 예비시험이 폐지되고, 법규는 문제에 조건으로 제시되는 등 하나씩 조건들을 없애다보니 지금 시험이 과연 전문자격사를 선발하는 시험이 맞는 건지 묻고 싶다”고 했다. 

건축사 자격제도 전반이 시장에 실제 참여하는 현업종사자,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위주로 설계되어서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항년 원장은 “합격자 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건축이 갖는 공공성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건축설계, 감리를 책임질 수 있는 전문자격자를 시장에 공급하는 방향이어야 하며, 대학의 교육도 그들과 함께 업무를 수행하게 될 수요자인 건축사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실무수련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사회와 제도가 요구하는 수준의 실력을 갖춘 건축사를 필요로 하는 수요자, 즉 건축주 중심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했다.

김지한 운영위원도 “인증받은 대학이 사실 너무 많은 상황이다. 시험개선의 본질은 건축사 자질의 문제이며, 지금 시대에 합격자 수를 논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교육인증·실무수련 등 모든 것이 맞물려 있기 때문에 협회가 그간의 시험 변천과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국토부, 대국민을 상대로 ‘공공의 업무’를 수행하는 자격수준에 맞게 시험으로의 개선을 두고 설득하고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재록 건축사협회 부회장은 “시험은 인위적으로 합격자를 양산하는 방법이 아니라 충분한 실력과 자질을 갖춘 건축사를 선발하는 방식이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과목별 고른 난이도를 흔들림 없이 유지해야 하고, 전반적 실무를 고루 충실히 수행하면 무난히 합격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시험이 기능적이고 법규적인 측면만 강조되어 있으나 프로세스가 중요한 건축의 특성상 건축사 자질을 평가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응시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단지계획, 매스계획, 단면, 입면계획의 개념을 논리적이고 일관성을 갖고 결과물에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김재록 부회장은 “시험 채점방법도 변별력을 확보키 위해 충분한 채점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며 “현재 3년 경력자면 시험에 응시가 가능한데, 주택도 혼자서 설계할 수 없는 능력이 대부분이다. 개업을 해보지만, 계약, 도서작성, 착공, 감리, 사용승인, 유지관리 등을 담당할 능력이 안 되다보니 자격대여 등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현실이다. 사무소를 개업하려면 이런 업무를 감당할 수 있게 능력이 겸비된 후 개업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