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생존’을 경영 의사결정의 키워드로
경영학은 고성과 창출에 기여하는 학문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학자나 컨설턴트들에게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이전에 비해 더 높은 성과를 내는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추석은 무엇인가’라는 칼럼으로 유명해진 김영민 서울대 교수의 화법대로 ‘고성과란 무엇인가’란 근본적이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고성과는 과연 무엇일까? 더 높은 매출을 달성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매출이 많아도 뒤로 손해가 난다면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고성과를 더 많은 이익을 내는 것으로 정의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어떤 이익이냐에 따라 조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실제 한 공기업은 대규모 이익을 냈는데 그 원천이 원재료 가격 하락 때문이었다. 이는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원재료의 가격 변동에 대해 전혀 헤징(위험 회피)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 이 기업은 몇 년 후 원재료 가격이 오르자 엄청난 적자를 냈다. 이익의 질과 지속성 등도 함께 따져봐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 조직을 사람에 비유하면 더 흥미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크고 아름다운 체구를 갖고 있으면서, 큰 돈을 벌고 있다 해도 곧 죽을 운명이라면 이런 삶을 선택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업 역시 사람들의 바람처럼 ‘건강한 장수’가 가장 가치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건강한 생존’이 고성과의 아주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실제 경영학의 한 분야인 거시조직 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기업 조직의 생존을 핵심 성과 지표로 자주 사용한다.
‘건강한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놓고 경영 의사결정을 하면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만약 특정 분야의 사업이 급성장해서 엄청난 매출을 올렸다면 매출 중심의 사고에서는 크게 기뻐할 일이지만, 생존 중심의 사고에서는 우려할 만한 일이기도 하다. 환경이 급변해 해당 분야의 매출이 급감하면 곧바로 생존 위협이 닥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생기면 현명한 경영자는 자만하지 않고 우산과 짚신을 함께 팔아 위험을 분산한 것처럼 새로운 포트폴리오 구축에 매진할 것이다.
고정비와 변동비 이슈도 매우 중요하다.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는 고정비는 가급적 줄이고,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변동비 비중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지금 장사가 잘 된다고 무모하게 고정비 규모를 키우다보면 나중에 경기 악화나 시장 재편 등 위기 상황에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다.
사회적 책임에 대한 시각 역시 달라진다.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적적 규범을 잘 지키는 것은 선의에서 비롯된 행동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조직의 장수를 위한 필수 요소로 볼 수도 있다. 사회에서 지탄받는 기업은 정당성(legitimacy)이란 자산을 잃게 돼 조직의 존립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은 현재의 경영 환경에서 ‘건강한 생존’은 의사결정의 중심 가치로 손색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