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허물 똑똑

2020-10-07     함성호 시인

허물허물 똑똑

- 김언

뱀의 노크 소리를 못 들었다는 사람이 문을 열고 나와서 내게 묻는다. 뉘시오?

나는 아까 전부터 여기 서 있었는데 뱀의 노크 소리를 못 들었다는 그 사람의 구부정하고 어리둥절한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를 가르켰다. 저기서 온 것 같다고.

그는 분명 나뭇가지 너머를 가르키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런 주문을 한 적이 없는데 고향에서 탄생한 돌을 은쟁반 가득 담아 왔다. 이제 막 나뭇가지를 내려와서 몸을 푸는 그 돌을 먹으라고 권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주문을 한 적이 없는데

돌은 벌써 껍질을 벗고 있다. 목구멍 너머 열심히 다른 말을 찾아가는 것이다. 혀를 날름거리며.

 

- 김언 시집 ‘모두가 움직인다’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자연과학의 언어가 수학이라면 인문학의 언어는 시다. 수학은 가장 논리적인 언어다. 그런데 뜻밖에, 그것도 아주 종종 수학은 의외의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던져 놓는다. 예를 들면 ‘바나흐-타르스키 역설’이 그것이다. 하나의 구를 해체 해서 그 조각들을 다시 조합하면 해체하기 전과 똑같은 구를 두 개 얻을 수 있다. 또, 위상수학은 도넛과 찻잔을 같은 도형으로 파악한다. 시의 언어가 펼쳐 놓는 세계와 수학의 언어가 펼쳐 놓는 세계가 엇비슷하다. 분명, 시와 수학은 같은 도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