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로 놀기
소형주택 설계비 그리고….
3년 전 지인에게 설계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100평 미만의 땅에 사업성을 분석하여 대안을 제시하는 것인데, 2∼3주 고민하여 안을 설명하고 전체적인 일정을 얘기했다. 마지막으로 설계비에 대해 얘기하는데 헉하고 놀라며 하는 말 “사실 이미 허가를 받았다. 300만 원주고…”, “.......................”
주변을 둘러보면 우린 건축 군들 속에서 살고 있다. 제일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축물은? 아파트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접하는 주거 군은 다가구, 다세대. 설계 한 건 당 받을 수 있는 설계비는 1000만 원 안팎. 외주비(설비, 전기, 구조)주고, 월급 주고…. 별도의 감리비는 생각도 못 하고 받은 설계비에서 감리하고 준공처리하고. 내 손에 쥐어지는 몇 푼의 설계비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일은 또 얼마인지. (건축에 관한 공소시효가 없다.)
누가 공사하나?
소형주택, 다가구 주택 등은 누가? 일반적으로 직영공사다. 서류상으로는. 그런데 둘러보면, 건축 전문직이 아니면서 돈을 벌고 있는 부류의 제3의 건축직이 존재한다. ‘업자’ 건축사들이 업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건축사사무소에 설계를 의뢰하러 오는 꽤 많은 수가 이들이기 때문이다. 싱크대 공사하다가, 벽돌 공사하다가 등등 한 두 건 또는 두세 건의 공사를 맡다가 본인 소유의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파는 이들을 우리는 업자라고 부른다. 5층 규모의 다가구 주택을 공사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4∼5개월. 일 년에 본인 소유건물 두 개와 기타 공사까지 맡아서 하면 연 수입은? 2억에서 4억? (다세대주택은 건설업면허 필요. 3∼5층 다가구 주택은 누구라도 공사 가능. 기록에도 남지 않음. 오로지 건축사 책임. 건축사 수입 : 무자격업자 수입 = ?)
건축사의 영역 - 담 밖으로 시선 돌리기
네모난 테두리 하나 그어놓고 얘기들 한다. “절대 침범하지 마! 내 영역이야.” 눈을 밖으로 돌려보면 건축도면조차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수억씩 버는 사회가 우리나라다. 안전에 대한 얘기, 내진설계에 대해 논하면서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무조건 감리 책임이라고 감리만 잘하면 되지 않으냐고 말하지 말기를. 영역을 넓혀 돈 버는 건축사나 돼볼까.
돈 버는 건축사
2년 전에 사는 집을 제2금융권까지 담보 잡히고 땅을 사고 집짓기 시작했다. 300만 원 허가비 받으며 버티는 것보다는 땅 사고 은행 빚 갚는 것이 더 쉬울 듯해서. 건축사가 집 짓는 건 쉽다. 일없어 하늘 바라보는 일보다 쉽다. 업자보다 더 머리는 아프고 공사비는 더 들어도 맘껏 해볼 수 있다. 남의 설계해 줄 여력도 없다. 내 건물 하나 제대로 완성하기 위해서 투자하는 시간이 더 경제적이다. 건축사로서, 사회적 공인으로서의 서비스정신 등등에 대해 지금은 말하지 말기를 바란다. 개업 후 12년을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조금 더 나은 설계를 위해 애썼으니. 앞으로 얼마간은 나를 위해 보람을 찾아도 된다.
건축사로 놀기
놀면서 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놀 수 있다. 놀아도 된다. 많이 보는 것도 공부요, 노는 것도 공부다. 한 층 한 층 올라가는 뼈대를 봐도 즐겁고 돌 붙일까 벽돌 마감할까 고민도 흥이 나고, 잘 꾸민 방을 들여다봐도 좋고, 방 보여 주자마자 계약해서 입주하는 것도 기쁨이고, 잘 팔리면 금상첨화다. 집 지으면서 노는 일이 12년 설계만 한 것보다 낫다. 놀기 참 쉽다. 돈 담기는 더 쉬운 듯하다. (아직 팔아 본 적이 없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자식 같아서 못 팔겠다. 이러다 부동산 거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