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자리를 찾읍시다

2011-05-01     임영환 AIA/LEED ap

2010년 10월 26일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의 준공식이 있었다. 그날 아침 주요 일간지들은 안중근의 거사 101주년에 맞추어 완공되는 뜻깊은 기념관의 준공식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기념관의 건립배경에서부터 기념사업회의 공적까지, 그리고 예상 외로 건축물의 계획개념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12개의 단순한 박스로 구성된 건축의 의미를 설명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사고를 건축물로 육화시킨 건축사에 대해 언급한 신문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11시에 시작된 준공식장에서 건축가는 초대받지 못한 불청객이 되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그 후 한 달이 채 못 된 11월 17일, 광화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는 “건축가의 자리가 없는 사회를 통탄한다”라는 제목으로 성명서 발표와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새건축사협의회의 삼단체장이 모두 참석했고, 건축가 유걸, 류춘수, 박승홍은 자신의 경험사례를 들어 대한민국 건축계의 현실과 사회인식을 통탄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준공식으로 촉발된 이번 사건은 적어도 단발의 외침으로 끝날 뻔했던 건축사의 푸념이 지상파와 일간지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지난 12월 2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정부와 공공기관 500곳에 건축 저작권자의 권익보호에 대한 공문을 발송했고 서울시는 오세훈 시장 지시로 건축사 우대문화 조성을 위한 여러 가지 제안들을 기획하고 있다.

한 사회가 표방하는 문화적 수준은 문화 생산물에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그 문화를 창조하는 사람들에 대한 대우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건축사가 예우 받는 사회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문화국가로 만들기 위해 분명 우리 건축계도 한몫을 담당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과연 건축은 어떠한 입지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오늘도 수많은 건축물이 이 나라 어딘가에서 세워지고 있지만 건축사의 모습은 쉽게 찾아볼 수가 없다. 언론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은 대형 시공사의 이름뿐이다. 건축물의 창작에 대한 저작권은 시공사나 건축주의 것이 아니라 바로 건축사에게 있지만 이를 아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하지만 우리는 늘 바로 앞 현실에 가로막혀 제 몫을 다 하지 못했고 자조 섞인 푸념으로 그것을 풀어냈다. 이런 일들은 건축사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한국 건축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며 우리의 문화수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부끄러운 모습이다. 작가 없는 출판기념회와 조각가 없는 제막식을 상상할 수 없는 우리 사회에서 유독 건축사 없는 준공식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고 건축과 건설을 구분 못하는 일반인들을 양산했다.

2010년 10월 29일자 중앙일보 27면의 작은 기사 하나의 불씨가 크고 작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번 ‘건축가의 자리를 찾읍시다’라는 건축가들의 성명이 대한민국 사회를 위해 건축사들이 제 몫을 다하는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자성의 목소리가 없는 외침은 메아리를 기대할 수 없다. 기자회견장에서 건축사 유걸이 말했듯 ‘국민 여동생’이나 ‘국민 가수’가 아니라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국민 건축가’를 가진 행복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 건축사들 스스로 변해야 하며 그것은 구체적이고 전략적이어야 한다. 외적으로는 대국민 소통과 언론홍보를 위한 실행 계획을, 내적으로는 자성과 함께 제도적인 관점에서 문제점을 차근차근 짚어나가는, 느리지만 힘찬 걸음이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