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벙주초와 우리의 삶

2020-09-17     추원호 건축사ㆍ건축사사무소 신세대그룹<전라북도건축사회>
추원호 건축사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기전까지 우리는 오로지 벽돌과 유리 그리고 철근 콘크리트와 콘택트(contact)했다. 공업화 시대에 걸맞은 공장제 제품을 사용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면서, 현대 기술에 놀라워했다. 빠르게 지어지는 초고층 빌딩과 공동주택을 보면서 철근의 위력과 레미콘 타설 능력, 컴퓨터화된 건축설계의 진보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는 시간이다. 미적인 현대적 건물만 다루다보면 우리의 옛 건축물을 접해볼 기회는 별로없다. 모처럼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사찰이나 고건축을 살펴보면 커다란 나무기둥 밑에 자연석으로 기초한 건물을 볼때가 있다. 지금의 한옥 기초판은 화강석을 기계로 곱게 다듬어 매끄럽게 세우고 그 위에 방부 페인트인 오일 페인트를 칠한 나무기둥을 올려 만든다. 반면 세월을 머금은 옛 건축물은 덤벙하게 생긴 자연석 기초가 기둥을 받치고 있다.

옛날 건물들의 주춧돌은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덤벙주초’라고 부른다. 표면이 거친 자연석을 그대로 깔고 기둥하부를 자연석 표면에 딱 맞게 깎아내는 것은 ‘그랭이질’이라고 한다. 전혀 다른 나무기둥과 이질적인 요소인 돌 받침이 만나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자연석 표면에 기둥을 세우려면 나무기둥 밑을 다듬어 돌 표면에 맞춰야 한다.

삼척 죽서루(보물 제213호, 덤벙주초)

단단한 돌을 깎아내기보다는 유연한 나무 밑동을 다듬어 덤벙덤벙한 돌표면에 밀착해 맞추는 것이 낫다. 그래야 강한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지금은 다양화, 다원화, 다분화의 시대이다. 각자 개성이 있고 자신만의 주장이 강하다. 의견이 서로 상충되거나 부딪칠 때 누군가가 한쪽에서 고개를 숙이고 양보해야 서로 화합이 되고 절충이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우리의 서로 다른 삶도 덤벙주초에 맞춘 기둥처럼 자신의 마음을 먼저 갈고 다듬어 그랭이질 하는 것이 어떨까.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기둥 밑을 갈고 닦아 자연석에 맞춘 것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사는 우리 건축사들도 덤벙주초처럼 덤범덤벙 살아보는 것도 좋겠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활개를 치는 이 시국에, 나와 함께 지내는 사람이 울퉁불퉁하다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내 모난 성격을 어떻게 맞춰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