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분노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대한건축사협회 입장 발표문 전문
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석정훈입니다.
저는 지금 회원 여러분께 이번 건축사 자격시험 결과에 대한 협회의 입장을 말씀드리고, 앞으로의 대책에 대해 회원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자 합니다.
다소 길더라도 끝까지 들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회원 여러분!
저는 지금 참으로 송구한 마음과 입술을 깨무는 각오 그리고 결연한 의지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지금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극심한 일감 부족으로 예외 없이 모두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의 발생은 이런 우리의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일터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무한 경쟁으로 내몰려 생존권마저 위협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 가운데 지난 7월 31일, 건축사 자격시험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통상 한 해에 6, 7백 명이었던 합격자 수가 올해 전반기에만 1,306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제 오는 9월 26일 또 후반기 시험이 한 번 더 남아있습니다.
협회의 주장을 외면하고 협회와의 협의를 저버린 국토부의 일방적 정책 집행에 참으로, 절망과 참담함을 넘어 분노마저 느끼게 됩니다. 협회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합격자의 확대만이 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준비도 없는 시행입니다. 이 무모함이 가져올 결과는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저는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그동안 밀려있던 숙제와도 같은 허가권자 지정 감리 건축법 개정을 마무리하고 각종 협회의 대내외 현안의 해법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며 오늘까지 쉼 없이 달려 왔습니다.
취임 후 지금까지 국토부는 물론이고 국회나 각종 관련 단체와 영향력 있는 건축 관계자들을 만나, 우리의 현실을 설명하고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회원과 하나 되어, 오래된 현안을 하나씩 풀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사회의 각 분야에서 우리를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
그러나 저는 이번 시험 결과를 보며 ‘아직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명백히 현재의 우리 협회, 우리 건축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자존감을 짓밟고 건축사로서의 긍지를 빼앗은 이번 결과는 어떤 이유, 어떤 변명으로도 이해될 수 없습니다.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시험 결과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협회 존립의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 건축사의 사회적 가치와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건축사의 삶은 어떠한가?
회원 여러분!
저는 회원 여러분께서 지난 선거에서 저에게 보내주신 지지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이번 결과에 얼마나 실망하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말없는 회원 여러분의 분노와 좌절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협회의 모습을 보며 느끼실 원망과 자괴감, 그리고 상실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에 미어지는 가슴으로 무한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협회는 지금까지 이 사태에 왜 아무런 말이 없나.’ ‘의사협회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 협회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나.’ 일부 회원들이 제게 문자와 전화로 또는 협회 게시판을 통해 답답한 심정과 울분을 토로하고 계십니다.
회원 여러분!
힘이 없다고, 단합이 안 된다고 서로 탓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상황에 대한 잘잘못은 우선 이 난국을 해결해 놓고 난 뒤에 따져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은 국가와 국민이 공감하고 인정하는 논리와 명분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저는 과거, 협회 현안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대응이 실리를 얻기는커녕 피해로 이어져 고스란히 회원들이 감당해야 했던 일들을 기억합니다. 솔직히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한 우리의 주장과 행동이 우리 모두의 염원인 ‘의무가입 법 개정’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회원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켜내는 것, 이것 역시 협회가 해야 할 최우선의 의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얼마 전 저는 회원 여러분께 ‘청와대 국민청원’을 독려하는 문자를 보낸 바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까지 5,327명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현재 우리 회원수가 11,418명인데 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숫자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모습입니다.
국민청원은 그 자체로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회원의 하나된 힘으로 우리의 의지를 표하여 협회의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우리의 일입니다.
참 많이 아쉽습니다.
의사협회의 시위가 뉴스의 중심에 있는 것은 우리 회원보다 열 배 이상 많은 13만 여명 회원이 단합하고 교수, 학생이 적극적인 참여하여 주변 관련 단체의 동참을 이끌어 자신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국토교통부에 다음과 같이 촉구하고자 합니다.
첫째, 국토교통부는 대한건축사협회를 진정한 건축정책의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는가?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법에 규정된 유일한 법정단체이다. 국토교통부는 협회와의 협의를 단지 명분을 쌓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는 지금까지의 관행을 끝내기를 촉구한다.
둘째, 국가는 국가가 수여하는 자격에 대해 자격자가 사회구성원으로 제 기능을 다해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보호하고 지원할 의무가 있다. 이제 그 역할에 더욱 충실하기를 촉구한다.
셋째, 모든 정책의 수립은 정책의 시행이 가져올 결과를 예상하고 실행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해서도 그 대책을 강구함이 당연하다. 건축사시험 년 2회 시행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 보았는가? 오늘의 건축사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란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건축문화 구현을 위해 건축사와 함께하는 진정한 정책동반자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넷째, 이번 시험 결과의 문제는 자격자의 숫자가 아니라 자질이다. 국민의 생명에 관련된 건축물의 안전은 건축사의 직업인으로써의 사명감과 높은 전문성을 요구한다. 합격자 과다배출로 자격자를 무한경쟁으로 내몰아 놓고 공공의 역할에 충실하기를 기대할 수 있는가? 무책임한 시대착오적인 탁상 행정을 즉각 중지하기를 촉구한다.
회원 여러분!
지금 우리 협회의 모습은 황폐하기 이를 데 없는 황무지에서 잡초도 뽑고 돌도 치우고 땅을 골라 이제 씨앗을 뿌린 단계로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 씨앗이 결실로 맺어지도록 잘 가꾸고 결실의 그날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회원 여러분!
오래된 우리 협회의 현안과 왜곡된 사회적 인식을 단 2, 3년 안에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답답하실 겁니다. 저는 여러분보다 열 배, 백 배 더 답답하고 더 조급합니다.
그러나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존경하는 전국의 일 만 일 천여 회원 여러분!
협회는 지난 8월 이사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대책을 수립하여, 이제 행동에 나서고자 합니다. 회장인 저부터 옷깃을 가다듬고 신발 끈을 단단히 동여매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보며 저는 다시 한 번 반드시 의무가입을 완성해야겠다는 결의를 스스로 굳게 다짐합니다.
회장인 제가 맨 앞에 서겠습니다.
찬바람과 돌팔매가 있다면 제가 먼저 맞겠습니다.
머뭇거리거나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건축사 자격시험을 년 1회로 되돌려 놓겠습니다.
건축사 자격을 면허로 환원시키겠습니다.
공공대가에 준하는 민간대가 기준을 법제화하겠습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지금은 우리의 주장을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들의 생존의 문제입니다. 협회를 중점으로 하나 되어 주시길 간곡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분명, 회원 여러분의 참여와 건전한 분노의 폭발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우리 협회를 변화시키고 이끌어 갈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께 꼭 필요한 협회, 회원 여러분께 인정받는 협회, 반드시 만들어 내겠습니다.
코로나19에 건강 유의하시고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9월 9일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