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5

2020-09-17     함성호 시인

터미널 5

- 이홍섭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늙으신 아버지 앞에서 몸을 부르르 떤 일
  슬픈 어머니 곁을 떠나려 했던 일
  한 여인을 끝끝내 사랑하지 못한 일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푸른 하늘을 향해 팔뚝질 했던 일
  컴컴한 밤, 죽어서 외로운 부도를 향해
  오줌발을 세웠던 일
  한 여인을 끝끝내 떠나보내지 못한 일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누군가 떠나고 
  누군가 다시 돌아오는 이 터미널

 

- 이홍섭 시집
「터미널」중에서 / 문학동네 / 2011년

이별이 하나의 사건인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들이 내 곁에서 떠나면서 밀려오는 존재감, 그러면 안 되는데, 혹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럴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렇게 하고만 일에 대한 후회, 쏟아낸 말들에 대해 그것이 내 진심 어디에 있다가 나온 것인지 생각하는 하루가 있고, 머리를 쥐어뜯는 여러 날이 있다. 그때 고백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보내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고 새로 오는 사람과 사건에 대해 우리가 성숙해지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렇게 서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