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론 싱클레어(Cameron Sinclair)가 이끄는 기업인
2020년의 공통 관심 키워드 3개를 꼽으라면 ‘코로나19, 기후변화, 아파트가격’을 꼽을 수 있겠다. 각자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건강, 생존, 경제생활에 큰 위협을 주는 요소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셋의 공통점이 바로 주거공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재택근무와 홈스쿨 등 주거의 복합적, 사회적 기능에 모두 공감했으며 급격한 기후변화는 제로에너지주택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깨닫게 한다. 또,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할 정도로 관심을 받는 아파트 가격은 주택의 본질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질적으로 급속히 변하는 시점을 싱귤래리티(Singularity)라고 했다. 올 한해로 주택에 대한 보건, 사회, 경제적 위상과 온 국민의 기대수준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것이 주거공간의 혁신을 부르는 시작점, 원동력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관심 키워드를 한 개 더 꼽는다면 ‘올림픽’이다. 원래 지금쯤이면 세계 최정상 선수들의 열띤 경기를 치맥과 함께 열광할 때인데 내년에도 기약할 수 없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흥미로운 또 다른 올림픽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LH 설계공모다. LH 설계공모는 지금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치열한 경기(competition)를 치루고 있다. 올 한해에만 160여개의 설계공모가 각자 테마를 가지고 개최되지만 그 중 몇 가지 독특한 공모전을 소개한다.
첫 번째, 금년에 처음 개최하는 미래건축 특별설계공모전은 국토부와 LH가 매년 1건씩 공동으로 건축정책 실증사업으로 추진하는 특별공모이다. ‘첫 스마트건축 주거단지’를 만들기 위해 자율주행차, 4차 산업 시범구역이자 제3판교라 불리는 성남금토지구 내 신혼희망타운(1,189호)을 대상으로 공모했다. 국내 굴지 건축사사무소와 글로벌 IT·가전·지능정보기술업체 등 파워풀한 6개 컨소시엄이 응모해 깜작 놀랐다. 스마트홈,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차, 스마트 모빌리티, 제로에너지, 언택트 등이 접목된 스마트 마을을 구축하는 것이 이 공모전의 목표다. 정부도 이번 공모전 등을 참고하여 향후 제로에너지, 지능형건축물 등 여러 인증을 스마트건축인증(가칭)으로 통합할 계획이라고 하니 향후 미래 모습이 크게 기대된다.
두 번째로 대구 인근에 있는 경산대임지구 공공주택 6개 블록(3,632호) 통합 설계공모가 있다. 지역 요소와 인문학적 자산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인 아파트 공급 개발방식은 동네 추억이 없는 아파트 키드(Apartment kid) 명칭까지 낳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역 이야기가 흐르는 주거단지 구현’, 즉 인문학적 설계공모를 위해 사전기획을 차별화하고 다양한 향토·문화·역사 전문가, 스토리텔링·웹툰 작가, 건축사, 지역주민, 해당지역 LH직원 등이 4개월간 스토리북을 만들었다. 경산대임 지역만의 인문학적 자산 즉 압독국, 남매지 설화, 오리, 팔공산 갓바위 등 다양한 지역요소에 건축사의 상상력을 더해 주거동, 옥외공간, 부대복리시설의 설계 모티브로서 설계지침을 제시했다. 이 공모전을 통해 삭막한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공통 추억을 만들어 주는 박물지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세 번째는 올해 파주운정3지구에 시범도입되는 공동주택용지 특별설계 공급 설계공모이다. 건설사에게 아파트 땅을 설계공모 경쟁을 통해 공급하는 방식으로서 설계안을 제출해야 하므로 건축사가 참여할 수밖에 없는 공모전이다. 평가의 주안점은 창의적인 설계안과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체육·편의시설 등 사회적 가치인데 건설사의 사업성 위주 설계관행을 깨는 혁신적인 설계공모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몇 가지 독특한 공모전을 소개했지만 이 모든 것이 한국의 주거공간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구심점을 찾고 새로운 혁신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설계공모는 건축사들의 치열한 올림픽이긴 하지만 지나친 약육강식이 됐을 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체급을 나누는 권투는 결과적으로 선수를 보호할 뿐 아니라 볼거리 다양성, 복싱 생태계 강화를 도모한다. LH는 상생방안으로서 신진건축사와 여성건축사 등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공모를 작년 7건에서 올해 19건으로 3배 가까이 확대해 능력 있는 소규모 건축사사무소가 공공부문 설계경험과 실적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설계공모 최대 발주기관으로서 향후 하고 싶은 과제가 있다. 세계적인 건축사들은 종종 "한국은 공모전 당선작 발표 때 주인공인 건축사 대신 심사자, 관료, 발주자가 주인공 같다"고 토로한다. 설계공모 발주기관은 실제 건축물을 설계하고 창작한 건축사가 빛날 수 있도록 더욱 세심한 배려를 하고, 더 나아가 스타 건축사를 배출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