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02     함성호·시인

- 박지혜

  아이가 아래로 달려간다

  언덕이 무겁게 올라온다

  누가 죽었나 보다

  갑자기 아는 사람 같다

 

- 박지혜 시집 ‘햇빛’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 2014년

때로는 말해진 것보다 말하지 않은 것이 더 큰 울림을 준다. 하나의 문장이 한 연이 되고 있는 이 시는 그런 말하지 않은 것들이 묵직하고 아득한 여백을 만들어 준다. 아이가 아래로 달려가면서 언덕이 올라오는 것은 마치 이 풍경을 카메라의 시선으로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 언덕이 올라오듯이 무거운 추측이 떠오르며 가라앉는다. “보다”는 떠오르면서, “같다”는 가라앉으면서 아이와 언덕의 미장센을 반복한다. 모두 우리말로 이루어진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