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의제_생존권 위협 ‘건축사 유례없는 과잉배출 논란’, 저가경쟁 판치는데 한 해 2,500명 배출이라니···

“과당경쟁은 건축서비스 질 향상 및 국민안전 확보할 수 없어” 건축사 참여 뺀 채 추진한 시험제도, 건축사 벼랑 끝으로 내몰아 “건축사 2만3,076명까지 55년, 5년 만에 그의 절반 배출될 판” 대책 없는 건축사 과잉배출, “일방적 행정이 시장 무너뜨릴 것” 8대 전문직 중 합격자 數 가장 높아 “시장개선 없는 시장참여자 확대는 부실설계만 양산” 건축사자격시험 연 1회로 환원해야

2020-09-02     장영호 기자

건축사자격시험을 연 2회 시행하는 원년 첫 시험에서 1,306명의 합격자가 나오자 건축사 과잉 배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코로나 발 미래가 불투명한 시장조건 속 타 분야에 비해 열악한 현실 등 근본적인 건축서비스시장에 대한 개선이 없는 상황에서 경쟁이 더욱 격화될 거라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국민을 위한 건축서비스의 질 제고를 위한다면 산업구조 개선이나 새로운 시장 개척 등으로 안정적인 산업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우선이나, 시장참여자만 늘린다면 오히려 시장정상화는커녕 시장을 망가뜨리는 저가경쟁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반응이다. 

대한건축사협회와 건축계의 반대에도 건축사자격시험 연 2회 시행을 강행한 정부의 시장에 대한 인식도 도마 위에 오른다. 시장에 대한 체감 정도가 현업 종사자들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건축서비스산업에 대한 관심과 개선에 대한 의지를 갖고 문제에 접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건축사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이는 국민 청원(자격시험 매년 1회로 변경, 건축사 업무 확대)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 건축설계 민간시장 상황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일까. 

◆ 극한경쟁에
    전국 평균 3.3제곱미터당
    설계대가 평균 3만4176원,
    현재 시장상태 정상적인
    설계업무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

대한건축사협회가 건축설계 시장의 개선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기초통계자료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2013년 2,912개 신축 건축물 사업을 대상(건축사공제조합 협조)으로 건물별 계약금액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해당 조사결과를 담은 보고서는 공개되지 못했다. 이유는 민간업무영역 실태를 조사한 나름대로 의미 있는 보고서지만, 조사 결과가 너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건축사사무소들 간 가격경쟁에 따른 저가수주로 해당 대가가 시장에 ‘희망소비자가격’ 형식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를 우려에서인데, 전국 건축물의 평균 3.3제곱미터당 설계대가는 고작 3만4,176원이었다. 법정대가 대비 약 20% 수준이다. 당시 16개 광역지자체 중 평균을 밑도는 설계대가가 시장가격으로 자리 잡은 곳은 모두 10군데에 달했다.

규모별 3.3제곱미터 당 설계대가 시장형성 가격


지자체들의 현황은 서울시와 비교하면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서울시의 3.3제곱미터당 평균 대가는 5만3,615원으로, 단독주택은 8만5,118원, 공동주택은 4만5,932원으로 가격이 형성됐다. 그러나 ○○지자체의 경우 단독주택의 평균가격은 2만8,764원으로 급강하하며, 공동주택은 3만3,189원이었다. 심지어 ○○시의 경우 단독주택 단가는 1만1,052원으로 나타났다. 지자체마다 가격이 널뛰는 것도 문제지만, 전반적으로 대가가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2015년 대한건축사협회가 수행한 ‘민간발주 건축설계업무의 적정대가에 관한 연구’에서도 그와 다르지 않다. 실제 수행한 건축설계 프로젝트 174건의 실제 계약금액은 현행 법정기준의 약 20~25% 수준인 3.3제곱미터당 7만3,927원으로 나타난다. 현재 시장상태가 정상적인 설계업무가 이뤄질 수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 현재 건축시장은 덤핑이 가능한 설계만 살아남고 있는 셈이다.

2015년 민간발주 건축설계업무의 적정대가에 관한 연구 결과_소규모 건축물을 대상으로


건축설계 민간시장이 이처럼 망가진 이유는 정부 책임이 크다. 정부조차 공공의 업무인 설계·감리업무를 자율경쟁 대상으로 분류한 결과 급기야 ‘건축사업무 및 보수기준’을 폐지했고, 법정 대가기준 요율도 30년 동안 그대로 방치해 둔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조차도 대가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가기준조차 없는 민간시장에선 이 같은 관행이 더 악질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 업계 자체가 불투명한 산업구조로 고착화 된 것이다.
타 분야에 비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근무조건, 그에 따른 건축학과 졸업생들의 건축사사무소 기피현상 등 각종 폐해는 여기서 비롯된다. 

서울의 한 건축사는 “과거 10명의 사망자를 낸 경주 마우나 리조트 체육관의 설계대가는 현행 대비 약 23%, 인명사고가 난 잠원동 붕괴 사고 감리비도 법정 대가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건축서비스의 질은 건축사 수급뿐만 아니라 건축시스템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나 개선 없이 시장참여자만 늘리는 정부 정책은 저가 설계를 부추길 뿐, 적정설계 하려는 건축사사무소 입지를 더 줄이고 설계품질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건축사자격시험,
   “건축기사 시험보다 못하다”,
   “퇴직자 취업통로 악용”이란 말도


타 전문직에 비해 합격자 수도 많지만, 문제는 앞으로 건축사 합격자 배출 속도가 더 가파르게 상승할 거라는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전문직 가운데 유일하게 자격시험을 연 2회 시행하기 때문이다. 지금 속도라면 2만3,076명의 건축사가 나오기까지 55년이 걸렸으나 당장 5년 만에 그의 절반에 가까운 합격자가 나올 전망이다. 일각에선 건축물 안전과 맞닿은 공공의 업무인 건축설계 및 감리업무 권한을 부여하는 건축사자격시험이 ‘건축기사 시험’ 보다 못하게 됐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서울의 B건축사는 “무분별한 자격자 배출은 논외로 하더라도 건축사가 되고 나서 일정한 수준까지 도달하기 위한 수련과정이 없어 앞으로 큰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이러면 시장 전체가 망가진다. 보통 젊은 건축사들이 클라이언트에게 끌려 다니다 보면 범죄자가 되어 버리기 십상이다”며 “주변 50대 초반 동료들도 건설사를 퇴직한 후 연금 플러스알파식 돈벌이 수단으로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려고 해 시장이 집장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체 건축설계업계 존폐가 걸린 문제인 만큼 정작 필요한 이들에게 건축사자격이 주어질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축분야는 ‘국제 수준의 건축사 양성을 위한 건축교육 체제로의 개편’ 및 목적 달성의 방안으로 일반 교육과정(Academic Degree)이 아닌 전문학위 교육 프로그램, 즉 5년제가 2010년 시행되면서 응시인원도 타 전문직 보다 많아졌다. 5년제 도입 후 양적으로 너무 팽창해버린 나머지 건축서비스산업 시장에서 필요한 일자리에 비해 프로그램 이수자가 과 배출되고 있다는 지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전문직 합격자 수 현황


관계자들 사이에선 ‘5년제’ 존립 당위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건축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 프로그램 이수자 각자의 선택이라 할 수 있지만, 도입 때부터 국제적인 건축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프로그램임에도 2018년까지 5년제 전문학위 프로그램 이수자의 건축사사무소 취업률은 평균 38.6%에 그치기 때문이다. 2018년을 기준으로 건설회사, 인테리어, 공무원을 비롯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유학, 대학원을 포함해도 취업률은 56.3%에 불과하다. 결국 교육과정을 이수한 60% 이상이 ‘건축사’라는 길을 포기했고, 절반가량은 5년의 시간을 버린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다. 
2017년 국세청의 ‘전문직 사업장 현황’에 따르면 건축사 월매출 200만 원 미만 비율은 5명 중 1명꼴인 19.7%에 달한다. 매출이 세전 및 각종 지출이전의 외형인 점을 고려한다면, 건축사 5명 중 1명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수익을 내는 셈이다. 

한 대학 관계자는 “전문학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해당 분야 취업률이 50% 미만이라는 건 교육제도가 목적하는 본질, 즉 학생들이 진출해야 하는 시장이 건강하지 않음을 뜻한다”며 “단순히 처우개선 차원에서 건축사 자격을 접근한다면 시장을 망가뜨려 업계 전체가 공멸할 우려가 크다. 5년제 존립 당위성까지 열어두고 시장의 개선과 변화가 반드시 수반돼야 미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