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펴는 건축사

2020-08-18     조한묵 건축사·건축사사무소 YEHA<대전광역시건축사회>
조한묵 건축사

얼마 전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이번에도 꽤 많은 합격자가 배출됐다고 들었다. 해마다 주변에서 합격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가 시험 보던 때가 생각난다. 필자는 2000년 밀레니엄 시대로 접어든 해에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다. 커다란 A0정도 크기의 트레이싱지에 건축계획 관련 모든 도면을 그려 넣던 시험의 마지막 해였다. 커다란 제도판을 낑낑대며 한쪽 어깨에 짊어 메고 시험장에 들어가 청 테이프로 책상에 고정시킨 후 세심하게 깎아 준비한 필기도구 통을 옆에 놓고 6시간 동안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땀을 뻘뻘 흘리며 도면을 그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엔 시험장이 대전에 없었기 때문에 시험 전날 광주까지 내려가 여관에 숙박했다. 낯선 곳에 있기도 하고 시험을 앞둔 긴장감에 잠을 거의 못자고 다음 날 시험에 임했었다. 시험 준비는 서울의 전문학원에서 했다. 주말마다 이틀을 꼬박 서울에서 지내다 일요일 저녁 늦게 내려오는 생활을 여러 달 반복했다. 그렇게 어렵게 취득한 건축사 자격이었다. 

하지만 자격 취득 후의 상황은 나아지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 시기가 IMF 관리체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라 더욱 그러했다. 20년이 지났지만 지금의 상황도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건축사로서의 삶이 여전히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고, 해야 할 일과 책임은 많아지는 반면에 대가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열심히 노력하면 소위 말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각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여전히 그것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이슈인 부동산 문제도 원인은 그 점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죽어라고 일해 봐야 노후가 보장되지 않을 것 같으니 무리해서 안전장치를 마련하다 부작용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며 건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해왔지만 현재에도 미래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대한건축사협회에 발 담가 봉사하며 활동해 온지 10년이 조금 지났다. 그동안 협회가 건축사들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해왔는지 쭉 지켜봐 왔다. 반갑게도 최근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기 시작함을 느낄 수 있었다. 진실로 회원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의 협회가 되어가는 것을 보며 건축사로서 희망도 갖게 됐다. 설계하면 덤으로 해주었던 감리에 대해 제대로 된 비용을 받으며 일하게 됐고, 불합리한 인허가 관행과 입찰 제도와 그 대가 등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어 사무소 운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더해 최근 추진하고 있는 대한건축사협회 의무가입까지 실행된다면 사회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더욱 공고히 하는 여러 정책들의 합리적 실천에 탄력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건축사들이 국민적 신뢰를 얻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기가 훨씬 용이해지리라 생각한다. 

아무쪼록 이번에 자격을 취득한 후배 건축사들이 그런 굳건한 토대 위에서 어깨를 쭉 펴고 자신 있게 개업하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