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진

2011-04-01     장양순 건축사

이번 일본의 지진과 이로 인한 쓰나미 등이 한국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의 이웃이라는 것 외에,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쓰나미의 실제영상을 화면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매스컴들은 국내 상황과 같이 실시간 소식을 전하고 이와 함께 한국은 지진에서 안전한가에 대하여 역사적 사례부터 미래예측에 이르기 까지 학자들을 동원하여 분석, 보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지진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삼국사기와 고려사 그리고 조선왕조조실록을 통하여 2천회나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는 혜공왕(779년) 때 경북 경주 지방에서 민가 붕괴로 100여 명이 사망한 기록이 보이고, 고려사에는 충선왕(1311년) 때 고려 왕궁이 피해를 본 것이 적혀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삼국시대의 서울 위주에서 벗어나 전국각지의 지진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1681년의 숙종실록에는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소리가 우레 같았고 담벽이 무너졌으며, 기와가 날아가 떨어졌다.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쳤는데, 마치 소리가 물이 끓는 것 같았고, 설악산의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대한 바위는 모두 붕괴됐다. 이후 강릉 양양 삼척 등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는데, 이때 8도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고 지진과 그로 인한 해일(쓰나미)이 강원도 지방을 강타한 것과 여진과 그 여파가 전국적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작년에 재일지질학자인 소원주 씨는 ‘백두산 대폭발의 비밀’이란 책에서 발해의 멸망을 백두산의 대폭발로 주장한다. 일본 북부에 쌓인 10세기 백두산 화산재를 연구한 그는 고려사 등의 946년 조에도 ‘하늘의 북이 울렸다. 천둥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들렸다’라는 기록이 있다면서, 당시 백두산의 폭발은 폼베이를 덮친 베수비오화산보다 100배나 강력한 폭발이었으며, 발해 오경(五京)의 중심에 있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근대적 지진기록은 1905년 제물포에 계측기를 설치한 이후이다. 70년대 이후 지진 중, 진도 5이상은 78년 속리산일대와 홍성지진, 07년 평창 정도로 이 중 가장 큰 피해로 기록되는 홍성의 경우도 부분파손은 많았으나 완파건물은 토담집 한 채 뿐이었다. 국내에 내진건물이 18.4%뿐이라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계속 보완해야할 사안이며 그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보다는 정신대할머니까지 나선 일본돕기에 건축인들도 모두 나서, 악을 선으로 갚음으로 영원히 선한이웃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