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현의 건축시평] 코로나19와 함께한 교수 건축사의 일상
그 누구도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 속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돌파구를 찾으며 새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으라는 말처럼 코로나19의 현 상황을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본다면 더욱 우울하기만 할 것 같다. 최대한 국가의 방역 지침에 따르면서도 각자가 중심을 갖고 본연의 임무를 열심히 하길 희망해 본다. 특히 건축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건축의 패러다임이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지혜를 나누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정확히 7개월 만에 2번째 기고를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것들 대부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으며 아직도 좀처럼 없어질 기미가 안 보이는 코로나19 때문에 경험하게 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인 모두가 예전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거듭 깨닫게 되었고, 자유로운 이동과 여행, 그리고 집단이 함께 공유하고 참여하는 축제와 이벤트 등을 간절히 바라다 못해 이제는 거의 체념하면서 또 다른 비대면적(Untact)인 대체 방안들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다.
코로나19와 관련한 다양한 경험과 에피소드도 직종에 따라 천차만별로 회자되고 있다. 필자는 크게 4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것들은 자가격리 경험, 비대면 건축설계 수업, 비대면 화상회의를 통한 국제지명설계공모 관리용역 수행,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축 트렌트 등이다.
2월 말 어느 날, 서울 문정동에서 프로젝트 관련 회의가 예정돼 있어 같이 일하는 건축사 한 명과 오송역에서 SRT를 이용했다. 올라가는 기차표는 필자가 예매를 했고, 내려오는 것은 동행한 건축사가 했다. 회의를 마치고 오후 3시경 기차를 타고 다시 오송역을 통해 주차해 놓은 차를 이용해서 각자 귀가를 했다. 그 이후로 각자가 바쁜 일상을 보내며 일주일 정도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10시가 넘어 동행했던 건축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조금 전에 평택보건소 직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는 것, 돌아오는 기차의 우리가 탔던 칸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는 것, 그래서 우리 둘이 자가격리 대상자가 됐다는 것이 요지였다. 그는 나도 내일 아침 관할 보건소와 주민자치센터에서 전화를 받을 것이라고 했다.
확인 결과, 우리는 확진자와 20분간 같은 기차칸에서 있던 것으로 조사됐다. 돌아오는 표를 구입한 건축사의 신용카드 정보로 동승자인 필자까지 추적했음을 알게 됐다. 다행히 그때 우리 둘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14일간의 자가격리 기간 중 이미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연락을 받은 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인 일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현관문 밖을 그렇게 오랜 시간 안 나간 적이 없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놀란 가족들을 다른 집으로 대피시켰다. 홀로 집에만 있으니 몸도 찌뿌둥해지고 열도 좀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심리적으로도 예민해지는 것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사실 그전까지 여러 가지 일들로 연말과 연초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면서 다소 무리하면서 지내왔던 터라 이런 식으로라도 집에서 쉬게 되니 자신의 생활을 되돌아보는 한편 그동안 연락 못했던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살아가는 소식을 주고받는 등의 생활적인 여유를 합법적으로 선물받은 것도 사실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개인위생이나 방역에 대한 관리나 실천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욱 각별히 신경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처럼 무리하면 감기나 호흡기 질환 등에 걸려 간간이 동네 병원을 찾던 습관이 없어졌고, 자주 물을 마신다든지 가족들끼리라도 각자의 그릇에 덜어서 음식을 먹는다든지 심지어는 실내 온습도를 조절하거나 환기를 하는 등 실내 공기질에 있어서도 예전보다 의식적으로 관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인데다 특히 다분히 실기 위주로 진행이 되는 건축설계를 맡고 있다 보니 코로나19의 여파는 필자에게 매우 큰 패닉 상태를 야기했다. 특히 1학기 내내 교과부의 결정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지침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우왕좌왕하기 일쑤였고 대면과 비대면 수업에 대한 교과목별 대응방안이 달라 대학 내의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다.
그나마 필자가 재직 중인 대학에서는 비대면 수업 등의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한 준비와 대처가 신속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3월 초에 총장님을 비롯한 전체 교수들이 특정 화상강의프로그램(본 원고에서는 Z-프로그램으로 명기함)에 접속해 프로그램의 사용법 등에 대한 교육을 받는가 하면, 교수학습센터에서 다양한 온라인 수업 지원에 대한 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받아왔다.
일단 필자는 2학년 설계수업을 담당하는 2명의 외부강사들과 Z-프로그램에 가입하고 거기서 몇 차례 만나 프로그램을 수업에 익숙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법을 공유했다. 컴퓨터 모니터도 듀얼로 세팅했고, 웹캠과 헤드셋도 구매했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보다 안정적으로 학생들의 작업을 체크하고 피드백하기에는 데스크톱에 듀얼 모니터를 장착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건축설계 수업 시 Z-프로그램을 사용할 때 가장 편리한 기능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화면공유 기능이다. 각자가 작업한 것을 말 그대로 화면에 공유시키면 그 안에 접속한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도 있고, 각자가 그 위에다 주석달기 기능을 이용해 체크나 표시를 할 수 있다. 물론 자세히 그려주는 것은 힘들지만, 큰 틀에서 학생들에게 보다 좋은 방향의 대안을 설명해 주는 기능으로는 부족함이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가끔 다른 교수나 강사들에게 온라인 비대면 수업을 어떻게 진행하는지 물어보면, 아직도 동영상 촬영 파일을 올려놓고 학생들이 그것을 학습하고 과제를 하게 한다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필자는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이라 하더라도 시간표대로 실시간으로 쌍방 소통하길 원한다고 생각한다.
일단 필자는 설계수업 직전 단톡방을 통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입장을 유도한다. 전체 출석이 확인되면 수업 공통사항을 전달하고 개인별 또는 2~3인씩 에스키스 받을 순서를 정해 단톡방에 올려놓도록 지시한다. 경험상 학생이 다른 학생들의 작품도 같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공부이기에 번갈아가며 다른 학생들과 같이 에스키스를 받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중간고사에 해당하는 중간 작품 발표 역시 지난 학기에는 Z-프로그램 내에서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먼저, 한 반 10명의 학생들이 파워포인트 녹화 기능을 사용해 각자 자신의 작품을 약 10분간의 MP4 형식의 동영상 파일로 만들었다. Z-프로그램 내에서 순서대로 그 파일을 구동시키면 필자가 코멘트를 하고 다른 학생들은 발표 학생의 작품에서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메모한다. 이 내용을 필자에게 전달하도록 주문했다. 즉, 1명의 학생 작품에 대한 9명 학생들의 코멘트가 교수인 필자를 거쳐 무기명으로 다시 본인에게 피드백되는 방식이다.
이 또한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굳이 시도해보지 않았을 방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매우 효과적이고 오히려 작품 결과물의 품질을 올리는 데 더 일조할 수 있는 가능성도 느끼게 해줬다.
뭐니 뭐니 해도, 지난 학기 내내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던 일 중 하나는 국제지명설계공모 관리용역 책임자로서 했던 경험이다. 국제지명(초청)설계공모를 통해 인근 국립대학에 부설되는 기숙형 특수학교의 당선작을 선정하는 프로젝트를 맡았다. 5개의 지명팀 중 4팀이 유럽, 미국의 해외팀이었고, 6명의 심사위원 역시 5명이 유럽, 미국의 외국인들이었다.
결국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Z-프로그램을 사용한 원격화상회의 방식으로 사전 오리엔테이션 및 본 심사위원회가 진행됐다. 게다가, 지명 받은 대표 건축사가 직접 Z-프로그램 내에 들어와 자신들의 작품을 발표하고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까지 무탈하게 진행됐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는 미국인 교수가 진행을 맡았다. 각국의 시차를 고려해 한국시간으로 밤 9시부터 본 심사위원회 때는 다음날 새벽 2시까지 회의가 강행됐다. 참가팀들의 대기실 역시 Z-프로그램에서 별도로 방을 개설해 운영하였으며 진행자와 심사위원들은 Z-프로그램의 채팅메뉴 기능을 활용해 심사서식들을 송수신 하고 화면공유 기능으로 회람을 갈음했다. 생경한 운영방식이었으나 필자에게는 세계적인 거장들이 구두로 우수한 작품을 발표하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한 것만으로도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점 하나는 한 프랑스팀이 자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점점 심해져서 제출을 포기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는 2020년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아일랜드의 Grafton Architects와 한국의 SPACE Group의 합작품이 당선됐다.
이제까지 설명한 내용들이 모두 코로나19로 국내외가 혼돈된 상황이었던 지난 7개월 동안에 필자에게 일어난 일들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다가올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필자는 얼마 전에 건축학도를 꿈꾸는 인근 고등학교 건축동아리반 학생들에게 특강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필자가 설명한 일부 내용을 아래와 같이 리마인드하겠다.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사들이 가까운 미래의 사회변화를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거공간이 좁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새벽같이 나갔다 밤늦게 귀가하는 식구들이 많아서 그 사실을 못 느꼈던 것입니다. 운동기구를 놓는 방, A/V 룸, 재택근무를 위한 서재 등도 집안에 있기를 원하게 됐습니다. 따라서 숲세권, 학세권에 편의시설까지 잘 갖추어진 곳의 비교적 새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는 상승할 가능성이 많아 보입니다. 언택트 시대의 뉴 노멀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를 상상해보고 그것을 공간화해보는 것은 근 미래의 건축학도 및 건축사들에게 중요한 숙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