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대기업
스타트업을 만들어 성공한 한 사업가는 원래 창업에 뜻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유는 전쟁과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나야 토지, 노동, 자본과 같은 생산요소가 거의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오는 데,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변화가 촉발됐고 이는 전쟁 못지않은 위력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판단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전쟁과 맞먹을 만큼 위력적인 디지털 변화 외에 또 다른 요인도 있다. 인더스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등 많은 문명들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끼친 핵심 요인은 기후변화다. 현재 우리는 극심한 기후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또 총균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에 따르면 전염병 역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중요한 요소다. 1000년간 유지돼왔던 중세를 몰락시킨 요인은 흑사병이다. 흑사병으로 농노 계층의 인구가 급감하면서 인건비가 상승했고 부르주아 출현의 조건이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이후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란 전망은 이제 상식에 속한다.
요약하면,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데 큰 영향을 주는 전쟁에 필적할 만한 디지털 변화, 기후 변화, 전염병이 현재 한꺼번에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에 영향 범위가 국한되지 않고 소비자 삶 전체가 뒤바뀌는 문명사적 전환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변화는 누가 주도할까. 필자는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예측은 납득하기 쉽지 않을 수 있다. 대기업은 월등히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우수한 인력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확보하고 있다. 탁월한 분업 시스템과 성과 평가 체계 등 운영 관리 역량도 뛰어나다. 이런 역량을 기반으로 대기업은 산업사회를 주도했다.
하지만 성공의 이면에 경직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까지 구축해온 구조와 시스템, 사업 방식이 성공의 바탕이 되었고 구성원들 역시 현재의 시스템이 지속될 것이란 굳건한 믿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도전과 혁신, 변화를 추진하기 힘들다. 대기업은 실패보다 더 무섭다는 ‘성공의 덫(success trap)’에 빠질 확률이 매우 높다.
반면 스타트업은 레거시(legacy)가 전혀 없다. 게다가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엄밀한 기획보다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게 이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럽다. 그래서 경직된 대기업에 비해 고객들의 잠재 욕구에 부응하는 사업 모델을 성공시킬 확률이 훨씬 높다. 게다가 공공과 민간 영역에서 거대한 규모의 투자금이 잠재력 있는 사업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
이제 대기업의 시대는 가고 있다. 기민한 스타트업들이 대기업들의 영역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가다가 거대한 플랫폼을 구축해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재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스타트업의 사고와 행동이 새로운 성공의 원천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