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파트를 향하여
새로운 건축·도시는 사회적 합의와 이해, 제도적 시스템 갖춰질 때 가능
요즘 우리시대 최고의 화두는 단연 아파트다. 날로 폭등하는 부동산 가치로서의 아파트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이고, 국민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중요한 주거유형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대에 아파트라는 주거유형은 어떤 솔루션을 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필요한 때문만도 아니다. 공공에서 주도하는 프로젝트의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사유재산인 아파트에 공공성을 도입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보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자신들만을 위해 스스로를 닫고 있었던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은 이웃에 열려있고 공유하는 공간과 프로그램들에 대한 제안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주동과 그 사이의 외부공간들도 단지 내 주민들의 공동성을 위한 다양한 주거유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동안 많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복도와 단위세대들은 물론 투명한 유리현관문에 이르기까지 공동체로서의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획기적인 제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한 의심에서부터 출발한 새로운 제안들이 다양한 채널에서 시도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어렵게 공모전의 판이 만들어지고 치열한 논쟁을 거친 심사를 거쳐 당선된 설계안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때문에 전혀 다른 계획안으로 변형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당선작이 충분치 않은 예산으로 인해 시공사에 의해 일부 변형되거나, 발주처 공무원들의 전횡으로 계획안이 일부 바뀌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최근에는 입주민들의 반대로 당선안이 전혀 다른 설계안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법적인 기준과 인센티브 등 가이드라인이 잘 만들어진 가로주택 정비 사업분야의 공모전에서 아주 우수한 계획안이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저층이란 이유로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와 민원으로 인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흉물스럽고 디자인이 조악한 고층의 나 홀로 아파트로 변경되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가로의 높이와 주변의 컨텍스트에 대한 고려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며 공동성이라는 우리 삶의 기본을 구성하는 요소이다. 향후 공동주택의 고층 고밀화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다양한 지역적 상황에 따라 여러 주거유형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져야 하며, 사람들 간의 다양한 접촉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당선작 전시회에서 보았던 대지의 상황에 충실한 중정형의 배치와 다양한 유니트로 구성된 다양한 형식의 발코니와 외부공간들 그리고 가로와 대응하는 주동의 형식은 매우 신선한 설계안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동산의 가치로는 고층이 최고라는 경제적 이기심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향후 당선된 설계안이 그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보다 치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건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도시는 사회적 합의와 이해 그리고 제도적 시스템이 갖추어질 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지들 간에 열려있고, 주동 간에 공유하고, 옆집과 소통하는 공동체적인 삶을 담은 집합주택의 전형들이 지속적으로 시도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시도들이 우리의 도시풍경을 바꾸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10년 전 미분양의 굴욕을 겪었던 국제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야마모토 리켄의 판교하우징에 살고 있는 주민들이 건축사에게 감사편지를 보내고 초대해 파티까지 열었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가 습관적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공동주택의 공간들에 대한 건축사의 실험적이고 파격적인 제안을 실제로 살아보고 공동체로서의 일상을 경험한 입주민들이 증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경험들이 인식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고 도시를 바꿀 것이며 문화를 바꿔나갈 것이다.